1심 뒤집은 결정적 기준 노태우 비자금 인정
유입 입증 안된 사실 불구 무리한 해석 비판
정경유착 낙인에 SK 이미지에 치명적 타격
노 관장 기여 인정 반면 임직원 기여는 배제
[헤럴드경제=정윤희·김은희·한영대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에서 1조3808억원이라는 역대 최대의 재산분할을 결정한 판결을 두고,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지원을 결정적으로 인정한 점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당시 비자금 유입 및 유·무형 혜택이 뚜렷하게 입증 안된 상황에 재판부가 무리하게 재산분할 기준으로 삼으면서 SK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나아가 최 회장 측이 즉시 상고할 의사를 밝히면서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과 ‘방패막이’ 역할 여부에 대한 논란이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SK그룹 내에서는 이번 판결로 사실상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 임직원들의 노력이 고려되지 않은 데 대한 허탈감도 감지된다.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지난 30일 최 회장 부부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2월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경 최종현 SK 선대 회장에게 비자금 300억원을 건넸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을 인정, 판결문에 직접 인용했다. 또, 최종현 회장이 태평양증권을 인수하는 과정 및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호막 역할을 했다고 봤다.
여기에 최 회장 부부의 결혼생활이 30년 넘게 이어졌고 SK그룹이 노 전 대통령 덕에 성장한 만큼 결과적으로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에 기여,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역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는 판단이다. 1심 재판부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최종현 회장에게 물려받은 특유재산(결혼 전 보유한 재산)”이라며 분할대상에서 제외한 것과 정반대 결과다.
최 회장 측은 300억원의 비자금이 SK그룹에 전달된 것이 사실인지 불명확함에도 재판부가 노 관장 측의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하나하나 공개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해당 비자금 전달 여부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견과 예단에 기반을 두고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이 300억원의 존재는 이번 이혼소송에서 처음 밝혀진 것으로, 과거 노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비자금과는 별개의 돈이다.
최 회장 측은 “6공(共)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것 없고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며 “오히려 SK는 당시 사돈이었던 6공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했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앞서도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그간 “SK그룹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적 없다”며 “이는 지난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도 이미 확인된 사실”이라고 주장해왔다. 최 회장은 재판에서 자신의 결혼 탓에 그룹이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으로 잘못 인식됐다며 이번 판결이 오명의 굴레를 벗어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방패막이 역할’이 판결문에 언급됨에 따라 SK그룹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다. 항소심 결과만으로 SK그룹의 성장이 정경유착과 비자금의 산물이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보호막 역할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그것을 노 관장의 기여로 볼 수 있는 지에 대한 이견이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정부 도움으로 기업이 컸다는 문구가 SK에겐 대외적으로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SK그룹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룹의 성장에는 그간 숱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임직원들의 정량적·정성적 기여도가 적지 않은데 이번 판결로 마치 SK그룹이 정경유착으로 성장했다는 오명을 안았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그룹 성장 과정에서 최 회장 부부와 노 전 대통령의 역할만 인정됐을 뿐 임직원들의 기여는 무시 당한 것 아니냐는 토로가 나오는 이유다. 법원이 기업을 총수 일가의 전유물로 여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결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자산 증식이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으면서, 부정한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인정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한다는 입장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과 보호막 역할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SK㈜ 지분의 재산분할 대상 결정을 뒤집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