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기레기(기자+쓰레기)’의 개과천선은 후배 기자들의 동기부여에 일조했다.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지난 14년간 은폐와 왜곡 보도를 일삼으며 재벌 총수의 비위를 맞췄던 송차옥(진경 분)은 새파랗게 어린 수습기자들에게 자극받아 잃어버린 ‘직업윤리’를 되찾았다.
14일 방송된 SBS ‘피노키오’ 19회 방송분에선 드라마 속 재벌총수의 계략으로 기자직을 내려놓은 송차옥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하는 계획을 세워 경찰에 출두, 재벌과 결탁한 언론사의 커넥션을 낱낱이 밝혔다. 그 과정에서 ‘개과천선’한 기레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끌어내리는 노하우가 공개됐다. 여기엔 별별 비리에 얽히며 검경 출입을 일삼는 대한민국 재벌가의 맨얼굴도 노출됐다. 재벌총수들이 사건 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은 흥미진진했다. 여론조작으로 ‘그들만의 왕국’을 지켜왔던 회장님들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얽힌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한 첫 단계로 일단 경찰 출두를 피하는 방식을 택했다.
1단계, 해외출장을 핑계로 출두를 연기하고 법무팀을 소집해 자신을 비호하게 하는 것. 하지만 수십년의 노하우가 탑재된 ‘기레기’ 송차옥이 그 뻔한 수법을 모를리 없었다. 드라마 속 재벌총수 박로사 회장(김해숙 분)의 정재계 커넥션과 언론 조작, 방송사 보도국과의 커넥션을 폭로하기로 마음 먹자 송차옥의 입에서는 재벌가 회장님의 뻔한 사건 대응방식이 줄줄 흘러나왔다. 경찰 출두를 미루려는 핑계는 ‘별장에서 개와 산책하는 모습이 폭로’되며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다.
2단계, 경찰서에 출두해야 한다면 기자들의 눈을 피해 일요일 오전에 갈 것. 혹시라도 마주칠지 모르니 정문 대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것. 박로사 회장 역시 공식처럼 이 같은 과정을 따랐으나 이미 송차옥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어린 기자들이 포진한 지하주차장에서 또 한 번 맞닥뜨리게 되자 심기는 불편해진다.
3단계는 물타기다. 자신의 민낯이 뉴스를 통해 공개되며 온, 오프라인을 떠들썩하게 하자 재벌총수는 사건을 덮기 위해 연예인 뉴스로 물타기를 시도했다. 건드린 사건은 연예인 프로포폴 상습투약. 사생팬 출신 기자 윤유래(이유비 분)의 저력은 여기서 발휘됐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통으로 날아갔으나 눈물까지 떨구던 사생 출신 윤유래 기자의 맹활약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한 인기가수 FAMA(이준 분)의 무혐의가 입증됐다. 연예인 사건, 사고 물타기로도 덮을 수 없는 ‘비리의 온상’이 회장님의 이름 앞에 붙는 상황이었다.
4단계는 회유다. 드라마에서 박로사 회장은 폐기물 처리공장 화재사건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그 책임을 난데없이 안찬수 경위(이주승 분)의 업무 태만으로 뒤집어씌우는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자신과 결탁한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기레기’ 송차옥에게 조작된 공장 CCTV를 건네면서다. 사건의 초기로 돌아가 박 회장은 안찬수를 회유하는 전략을 폈다. 현금과 각종 선물을 동원한 물질공세였다.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은 고소인이 소를 취하하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기 때문에 그를 회유하려는 수단이었다.
총 4단계로 진행된 재벌총수의 사건 대처법은 이미 수없이 봐왔던 현존하는 기업들의 방식과 흡사해 씁쓸한 웃음을 안겼다. 드라마 말미엔 5단계 돌입을 위해 “하던 대로, 권력을 행사해” 심기를 불편하게 한 사람들을 파멸시키려 했으나 현실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판타지로 대미를 장식했다. 어머니의 ‘살인미수’ 계획을 재벌2세 아들이 대신 자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재벌총수는 이제 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박로사 회장의 사건 대처법을 상세히 그려간 '피노키오'의 마지막 한 회분이 꽤 기대를 모은다. 박 회장의 몰락이 현실과 적절히 섞일 드라마의 최종회에서도 재벌총수들의 ‘출두 전용차’인 휠체어 장면이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