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잔고, 코스피 10조 돌파·코스닥 9조 육박…5개월 만에 최대치
인공지능(AI)·바이오(Bio)·가상자산(Coin)·방산(Defence Industry)株서 빚투 급증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행렬에 속도가 더해지는 모양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19조원 벽을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는 물론, 5개월 만이 가장 큰 수준에 도달하면서다.
글로벌 투자붐이 불었던 인공지능(AI) 관련주와 각종 기술 개발 등에 따른 추가 수익 기대가 커지고 있는 바이오(Bio Technology)주 등 성장주는 물론, 최근 급등세를 보였던 가상자산(Coin)·방위산업(Defence Industry) 관련주 등 주요 테마주를 중심으로 신용잔고 급증세가 두드러졌다.
신용잔고, 코스피 10조 돌파·코스닥 9조 육박
19일 금융투자협회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체에 대한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9조1554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 전인 지난 14일 기준으론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19조253억원으로 올 들어 처음으로 19조원 선 넘어선 데 이어 추가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 1월 2일(17조5371억원)과 비교하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74일 만에 1조6183억원이나 늘어났다. 증가율로는 9.23%에 이른다.
코스피, 코스닥 시장으로 각각 구분해 신용거래융자 잔액을 분석했을 때도 지난 15일 기준 두 시장의 해당 수치는 각각 연중 최고치인 10조2437억원, 8조9117억원을 기록했다. 코스피 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의 경우 지난 7일 10조원 선을 넘어선 이후 확연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코스닥 시장에선 그 규모가 9조원 대 턱밑까지 차오른 상황이다.
신용융자잔고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고 남은 자금을 뜻한다. 주가 상승을 기대해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많을수록 늘어난다.
기준 시점을 조금 더 넓혀서 분석해 보면, 지난 15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 신용거래융자 잔액 총합은 지난해 10월 6일 기록한 19조1750억원 이후 5개월 만에 최대치를 보였다.
주목할 지점은 19조원 벽을 넘어선 현재 시점의 신용거래융자 잔액 수준은 지난해 개인 투자자 중심의 ‘2차전지’ 투자붐에 따른 코스피·코스닥 강세장과 형태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코스피·코스닥 시장 신용거래융자 잔액 총합은 4월 6일~5월 2일, 6월 14일~10월 6일로 두 차례로 나눠 19조원 벽을 넘어 더 큰 수치를 보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포스코·에코프로 그룹주를 중심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투심이 쏠리며 발생했던 ‘제1·2차 2차전지 투자붐’이 발생했던 시기에 육박하는 빚투 규모가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AI·바이오·가상자산·방산株서 빚투 급증
헤럴드경제가 코스콤 체크를 통해 이번 달(결제일 기준 2월 29일~3월 15일) 코스피·코스닥 종목별 신용거래융자 잔고 변동 추이를 분석한 결과 가장 큰 폭으로 ‘빚투’가 증가한 섹터는 ‘A(AI·인공지능), B(Bio Technology·바이오), C(Coin·가상자산), D(Defence Industry·방위산업)’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글로벌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발(發) 투자붐에 힘입어 반등세를 보인 반도체 대표 종목에 대한 빚투 규모도 눈에 띄게 늘었다.
코스피 종목별 신용거래융자 잔고 증가액 1위는 774억원(증가율 27.3%)을 기록한 SK하이닉스였다. 이 밖에도 증가액 순위 5위에 이수페타시스(증가액 248억원, 31.2%), 8위에 한미반도체(158억원, 22.0%) 등 AI 반도체 관련주가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신용거래융자 잔고 증가액 5위에 에이디테크놀로지(128억원, 35.3%), 7위에 리노공업(114억원, 21%), 9위에 HPSP(108억원, 11.2%) 등이 기록되는 등 AI 호재에 따른 주가 상승 기대감에 베팅하는 ‘빚투족’의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었다.
방산 관련주에 대한 빚투 급증세도 눈에 띄었다. 코스피 종목 중 신용거래융자 잔고 증가액 4위에 기록된 방산 ‘대장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266억원, 33.0%)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대적으로 금액은 작았지만 현대로템(65억원, 6.1%), 풍산(56억원, 40.9%) 등에도 빚투가 모여들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쟁 국가와 인접한 유럽, 중동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선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군비 증강이 이뤄지는 중인 가운데, 가격 대비 우수한 무기 체계 제조 역량, 철저한 납기 준수 등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 방산기업들이 수혜를 얻었다”면서 “수은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국내 방산기업들은 2차 계약 협상에 나설 수 있는 기본 요건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섹터 종목들의 빚투 증가세는 코스닥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코스닥 시장 종목별 신용거래융자 잔고 증가액 1위를 256억원(38.9% 증가)을 기록한 레고켐바이오가 차지한 가운데, 3위 삼천당제약(138억원, 13.1%), 4위 셀트리온제약(129억원, 12.3%), 6위 에이비엘바이오(115억원, 33.5%) 등 최상위권을 바이오주가 휩쓸었기 때문이다.
레고켐바이오의 경우 오리온 그룹 내 인수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리며 빚투에 대한 투심마저 자극했고, 삼천당제약은 유럽 파트너사가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SCD411)의 바이알과 프리필드 시린지 제형에 대해 유럽 최초로 유럽의약품청(EMA)에 허가를 신청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이 밖에도 에이비엘바이오는 빅파마 로슈가 ‘혈액뇌장벽(BBB) 셔틀’을 적용한 이중항체 연구 결과를 내놓은 가운데, 국내 기업 중 독자적으로 ‘BBB 셔틀’ 기술을 지닌 에이비엘바이오가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자의 관심을 끈 것으로 평가된다.
코스닥과 마찬가지로 코스피 시장에서도 신용거래융자 잔고 증가액 7위와 11위에 각각 유한양행(168억원, 27.1%), 한올바이오파마(132억원, 24.6%)가 올랐다.
국내 거래소에서 개당 1억원 선을 넘어서며 ‘억(億)트코인’ 시대가 개막했던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을 필두로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이 일제히 급등세를 보이며 관련주에 대한 빚투도 급증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을 보유한 코스피 시장의 한화투자증권(63억, 18.7%)과 코스닥 시장의 우리기술투자(94억원, 24.2%) 빚투 급증세가 대표적인 예시다. 가상자산 위믹스의 발행사인 위메이드(99억원, 21.8%) 역시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늘었다.
“순환매 장세 속 다양한 섹터서 빚투 증가…변동성 키울수도”
신용잔고 규모로는 지난해 빚투를 이끌었던 2차전지주가 여전히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모두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피에선 5751억원의 포스코홀딩스가 신용잔고액 1위를, 2932억원의 포스코퓨처엠이 4위에 자리잡았다. 3월 들어 증가율은 두 종목 모두 2.7%, 1.2%에 불과했다. 다만, 2209억원으로 7위에 오른 삼성SDI는 3월에만 286억원 규모의 신용잔고가 쌓이며 1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닥에서는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의 신용잔고가 각각 2559억원, 1772억원으로 나란히 1·2위를 기록했다. 증가율은 각각 9.8%, 2%였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주도주가 없는 ‘순환매 장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중장기는 물론,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이 예측되는 종목과 섹터를 중심으로 빚투가 큰 폭으로 발생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지난해 2차전지 투자붐 등 과거와 달리 다양한 섹터에 걸쳐 큰 폭으로 빚투가 늘 수 있다는 점은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