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크리스마스 때 잠깐 하는 것도 아니고, 왜 가로수마다 전깃줄을 칭칭 감아놓나요?”
마포구에 거주하는 주부 A씨는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잠깐 며칠도 아니고 평생 몸에 전깃줄을 칭칭 감아놓는 셈”이라며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토로했다.
겨울철만 되면 거리에 늘어나는 게 있다. 바로 조명 장식,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이다. 그리고 단골로 활용되는 게 바로 가로수 전등 장식.
물론, 아름답다며 좋아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다. 관광 효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건 때와 장소가 있는 법. 인적도 드문 시간, 장소에까지, 그것도 잠깐 설치하는 것도 아닌, 상시로 설치해놓는 건 과하다. 전력 낭비는 물론, 더 중요한 건 나무 생장에 해롭다는 것.
가로수를 고온의 전등과 전깃줄로 칭칭 감아놓은 모습도 안타깝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감수하면서까지 설치하는 목적은 단 하나, 사람들 눈에 즐겁고자 함이다.
서울 마포구 한 도로. 약 1km 가량 되는 이 도로 옆 가로수엔 빠짐없이 전등 장식이 달려 있다. 여긴 최근 국내외 관광객에게 인기 많은 망원 시장 입구가 있는 곳.
낮엔 관광객 등으로 인파가 가득하지만 밤엔 전혀 다르다. 통상 재래시장은 오후 8시 전후으로 일찍 문을 닫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주민 외엔 인파가 드문 적막한 지역이 된다.
실제 저녁때 찾아가보니, 가로수 전구 장식이 끝없이 이어진 도로 길가엔 몇몇 거주민 외엔 거의 인파를 보지 못했다. 한적한 거리에 파티장 같은 전구장식이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겼다.
한 주민은 “잠깐 설치하는가 싶었는데, 겨우내 이어지고 있다”며 “보는 사람도 없는데, 전기가 아깝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가로수 조명은 무엇보다 나무에 해롭다. 겨울철 휴면기에도 나쁘지만, 특히나 잎이 움트기 시작하는 시기인 요즘엔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봄을 앞둔 시기가 되면 나무도 휴면에서 깨어나 봄을 준비하게 된다. 뿌리로 물과 영양분을 끌어올려 몸도 커지고 잎을 만들 준비도 한다.
밤에도 조명의 밝은 빛이 지속되면 식물의 야간 호흡량을 증가시키고, 이는 낮 동안 축적된 탄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만들어 생장을 방해한다.
실제 실험 결과, 야간 12시간 동안 빛을 노출시켰을 때 그렇지 않았던 경우보다 은행나무는 4.9배, 소나무는 3.9배, 왕벚나무는 2.4배 호흡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야간 조명에 노출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조명에서 나오는 열도 해롭고, 잎눈이 생기는 시기에 가로수를 칭칭 감은 전깃줄 때문에 물리적으로 잎눈 등을 상처입힐 수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측은 “나무 종류와 상관없이 영향을 받으며, 도시에서 자연과 공생하려면 조명 켜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