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30구에 만원 짜리 유기농 달걀을 샀는데 4번 달걀이에요. 이해가 안되네요. 도대체 1,2번 달걀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블로그 후기)
무항생제, 유기농, 동물복지… 달걀 하나 사려고 해도 선택지가 많다. 값이 많이 나간다고 무조건 좋은 달걀은 아니다.
행복한 닭이 낳은 달걀을 찾고 있다면, 닭에게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면 달걀 껍데기에 적힌 10자리 숫자 중 가장 마지막 숫자, 난각번호만 살펴보면 된다.
사육환경번호는 알을 낳는 닭(산란계)의 사육환경을 나타낸다. 사육환경번호 1번은 자유롭게 방목해 돌아다닐 수 있는(방사사육) 닭이 낳은 달걀이다. 실내에서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평사사육)에서 나온 달걀에는 2번이 붙는다. 1~2번 달걀만 동물 복지 인증을 받을 수 있다.
3번과 4번 달걀은 닭장에서 사육된 닭들이 낳았다. 3번은 1㎡당 13마리, 4번은 1㎡당 20마리까지 생활한다. 특히 4번은 A4용지 크기의 닭장에서 평생을 부대끼며 죽어가는 닭들이 낳은 달걀인 셈이다.
문제는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1,2번 달걀은 수소문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없다는 데 있다. 2022년말 기준으로 국내 산란계 중 방목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닭은 451만9000마리로 전체 알 낳는 닭의 6.1%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산란계들은 햇볕 한번 쬐지 못 하고,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한 채 공장식 닭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닭장 없는 사육이다. 전세계 동물단체들은 ‘케이지프리’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닭은 모래 목욕을 통해 몸에 붙은 진드기나 벌레를 떼어내는 습성이 있는데, 비좁은 닭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닭장에 갇힌 산란계가 낳은 달걀은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 살충제를 사용하는 건 물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면역력도 떨어진다.
실제로 국내에서 지난 2017년 살충제 및 농약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살충제 달걀 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법이 개정돼 내년 9월부터 산란계 한 마리 당 사육 면적이 최소 0.05㎡ 0.075㎡로 상향된다. 난각 번호로 따지면 4번 달걀이 내년 가을부터 아예 없어지고, 3번만 남는 셈이다.
그러나 닭장에 갇혀있다는 점은 그대로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싱글 침대에서 더블 침대로 바뀐 수준”이라며 “돌아다닐 수 없는 환경이라는 본질은 같다. 닭의 습성을 찾아주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닭장을 없애는 환경으로 가려는 노력은 전무한 상황이다. 국제 동물단체 연합인 오픈 윙 얼라이언스에서 지난 22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란계 사육 환경은 140점 만점에 34점, 특히 닭장 철폐 항목에서는 0점을 맞았다.
물론 닭장을 완전히 없앤 국가는 전세계적으로도 많지는 않다. 뉴질랜드의 경우 닭장을 아예 없애는 데 관련 법을 마련하고도 10년이 걸렸다.
산지가 많은 국내 특성 상 당장 닭장을 무조건 없애기는 힘들다. 자칫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달걀 수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달걀은 국내 축산물 중 자급자족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먹거리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닭들을 점차 늘리기 위해서는 산란계 농가들이 사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동물단체의 설명이다. 또 건강한 달걀을 손쉽게 구입하려면 소비자들도 동물복지 달걀의 수요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웬만한 농가에서 시설을 전환하고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제도 지원이 필요하다”며 “추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과 실제 가격의 있지만 동물복지 달걀의 인지도나 구매 의향은 해마다 오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