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사과에서 대추, 복숭아를 거쳐 이젠 레몬입니다”
레몬이 대구까지 북상했다. 이제는 자취를 감춘 사과는 물론이고 대추, 복숭아를 거쳐 외래 아열대 작물까지 터를 잡았다.
대구가 과거 사과 재배지로 적합했던 건 비교적 서늘하면서도 일사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날씨를 띄어서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대구 지역 과수원들의 작물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구시 농업기술센터는 아열대 소득과수 재배 시범농가에서 올해 처음으로 레몬과 천혜향을 수확했다고 13일 밝혔다.
대구시 농업기술센터가 처음 아열대 작물을 시험 재배한 건 2017년. 이후 2020년부터 농가에서도 레몬 재배를 시작했다. 대구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도 “레몬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레몬을 수확한 불이농장의 농장주 배수경 씨도 한때는 사과를 키웠다. 그러나 날이 따뜻해지면서 사과에서 대추로, 복숭아로 작물을 바꿨다. 현재 노지에서는 살구를, 5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천혜향과 레몬을 키우고 있다.
배수경 씨는 “금호강 일대의 과수원들은 사과를 접은 지 오래”라며 “이제 대구는 팔공산 중턱 추운 데가 아니고서는 사과를 재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 지역의 과일이 달라진 데는 기온 변화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대구와 경북의 평균기온은 13.7도로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평년 평균기온인 12.6도보다 1.1도 높았고 종전 1위인 2019년(13.5도)보다도 0.2도 높았다.
이처럼 평균 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생육 한계선도 북상 중이다. 통계청은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을 통해 2060년대에는 경북에서 아예 사과 재배가 어려워지고, 209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사과는 강원도 고원 지대인 정선 및 영월군, 최북단인 양구군에서 재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를 비롯해 경북 경주시와 경산군 일대에서는 사과의 자리를 천혜향이나 한라봉과 같은 만금류가 대체하고 있다.
레몬은 조건만 맞으면 연중 꽃을 계속 피우는 대표적인 아열대 작물로 만금류 중에서도 더 따뜻한 기온을 요한다. 전세계적으로 레몬이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은 인도, 그 다음이 멕시코다. 평균기온이 16도 이상인 지역에서 주로 자라고 적어도 최저 기온이 2~3도는 넘어야 한다.
이에 대구뿐 아니라 전남,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도 레몬 농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기후변화를 역으로 이용해 레몬을 농가 소득을 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전남 지역의 레몬 재배 면적도 0.7㏊로 전국 재배 면적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레몬을 재배하기 시작한 건 2003년이다. 실증 재배로 시작했으나 2020년 이후로는 20㏊ 면적에 600t 규모의 레몬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6~2020년 사이 생산량이 10배 가까이 가파르게 늘었다고 한다. 문근식 제주레몬연구회장은 “제주도 내에 레몬을 키우는 농가가 100군데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레몬 재배지가 넓어지는 게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라는 게 레몬 농가의 이야기다.
육지에서 처음으로 레몬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충남 아산 휴농원 농장주 안은재 씨는 10년 전 처음으로 레몬나무를 심었다. 함께 키우던 무화과나 수박 등 다른 작물은 모두 접고 현재는 500평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레몬만 재배하고 있다.
안은재 씨는 “기온이 한낮에도 영하여야 하는 1~2월에 레몬 꽃이 많이 피고 벌레가 죽지도 않는다”며 “자연은 더 이상 망가뜨리지 말라고 여러가지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