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업결합 심사 통과, 남은 건 미국
아시아나 미수금 2.7조 회수 청신호
대한항공 지원금 8000억원 엑시트 난제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정책 자금 약 3조5000억원의 회수길이 열렸다. 2020년부터 양사 합병으로 지원금 회수를 추진했으나 예상보다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길어졌다. 이번에 유럽에서 합병을 승인 받은 가운데 마지막 관문 미국을 통과해 산은이 구조조정 엑시트 성과를 올릴지 주목된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은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투입한 공적 자금은 총 4조4000억원이다. 아시아나에는 수출입은행과 함께 총 3조6000억원을 지원했으며 현재 미수금은 2조6600억원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최대주주인 한진칼에 총 8000억원을 지원했다.
양사 합병 거래는 산은이 고안한 이례적인 구조로 시장 관심도가 높다. 2020년 산은은 구조조정 매물인 아시아나 매각을 위해 투자자 대한항공을 확보했다. 거래가 종결되기 이전에 신규 투자자인 대한항공에 선제적으로 정책 자금을 집행했다.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등 인수합병(M&A)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따랐다. 실제로 산은은 2021년 하반기 양사 통합이 종결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3년 이상 지체됐다.
13일(현지 시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산은도 한시름 덜어냈다. 무엇보다 최근 HMM과 KDB생명 등 구조조정 매물 처분에 실패한 이후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EC의 기업결합 승인이 불발될 경우 아시아나에 지원한 자금 회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14개의 필수 기업결합 신고국 가운데 미국 법무부의 의사결정만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양사 합병의 가부를 결정하는 구조는 아니다. 통합 후 경쟁제한 문제를 해결하면 합병 반대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방식이다.
미국은 EC와 동일하게 화물 운송과 일부 여객 노선에서 독과점을 문제 삼았다. 대한항공은 미국 여객 노선 일부 이관,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 등을 준비하는 만큼 미국 법무부의 우려를 덜어낼 개연성은 있다.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모두 종료되면 예정대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신주 인수 절차에 돌입한다. 총 1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거래다. 유상증자 대금의 7000억원은 계약금으로 지급했으며 3000억원어치 아시아나 영구채도 보유 중이다. 아시아나는 대한항공이 확충해준 유동성을 활용해 산은 측의 지원금을 상환할 계획이다.
산은의 경우 아시아나 지원금 회수는 기대할 수 있지만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투입한 8000억원의 처리 방법은 난제로 지목된다. 산은은 한진칼 지분 10.6%를 소유 중이며 교환권을 행사해 대한항공 지분 약 3%를 확보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소수 지분이지만 한진칼은 경영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물량이다.
산은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경쟁력 강화' 효과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언급된다. 대한항공은 해외 경쟁당국에 약속한 대로 슬롯(항공기 이착륙 허용 능력)과 주요 도시 여객 노선 반납,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 등을 이행해야 한다.
시장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가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통합 명분은 약해졌지만 합병 이후 여객 부분에서 사업 시너지는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