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2년 7개월 만에 시총 50조 돌파
기아, 5일 장중 52주 신고가·역대 최고가 기록 경신
현대차그룹 시총, 올해만 12조 넘게 증가
“반도체·2차전지株 부진, 삼성·SK·LG·포스코 그룹 시총 끌어내려”
현대차·기아 外人 투심 강력…“ROE 개선·주주환원·낮은 PBR 강점”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올 들어 펼쳐진 국내 증시 자동차 섹터 ‘대장주’를 둘러싼 현대차와 기아의 ‘난형난제(難兄難弟)’ 집안 대결의 열기가 현대자동차그룹 전체 시가총액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시총 50조원 선을 선점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두 종목의 시총은 각각 7조원이 넘게 늘어났다. 이 결과 국내 7대 그룹 중 삼성, SK, LG, 포스코, 롯데, 한화 등 6개 그룹사의 시총 규모가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보다 뒷걸음질을 쳤지만, 현대차그룹만은 유일하게 ‘플러스(+)’ 변동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주가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 국면에 놓여있다는 이유로 국내 증권가에서 현대차·기아에 대한 추가 상승 가능성에 베팅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현대차, 2년 7개월 만에 시총 50조 돌파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현대차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4.85%(1만1000원) 상승한 23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로써 종가 기준 현대차 시총은 50조3445억원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시총이 50조원 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 2021년 7월 6일(50조4257억원) 이후 2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전날 기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00%(1200원) 떨어진 11만8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로써 시총은 지난 2일 종가 기준 48조443억원에서 다소 감소한 47조5618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 5일 장중 기아 주가는 52주 신고가이자 역대 최고가인 12만13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 주가가 급등세를 탄 이유는 지난해 국내 기업 중 영업이익 1·2위를 만년 1위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현대차(15조1269억원), 기아(11조6079억원)가 나란히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 모두 1배 미만의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1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 발표를 통해 저 PBR 기업의 기업 가치를 어떻게 높일지 공시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1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한자리에 모인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F4 회의)’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을 이달 중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저 PBR 기업에 대한 투심이 자극된 바 있다.
지난달 17일 이후 현대차와 기아 주가는 각각 27.82%(18만6200→23만8000원), 31.74%(8만9800→11만8300원)씩 상승했다.
현대차그룹 시총, 올해만 12조 넘게 증가
현대차·기아의 호조는 현대차그룹 전체 시총에도 온기를 불어넣은 모양새다. 지난 5일 종가 기준 현대차그룹의 시총은 145조668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12월 28일) 종가 기준 시총 133조2081억원 대비 9.35%(12조4603억원)나 늘어난 것이다.
현대차그룹 내에서 기아 시총의 증가액이 7조3574억원으로 가장 컸고, 현대차가 7조2978억원으로 그 뒤를 따랐다. 현대오토에버(-1조5604억원), 현대모비스(-5151억원), 현대제철(-1668억원), 현대글로비스(-1275억원), 현대위아(-462억원) 등의 시총이 감소세를 보였지만, 현대차·기아의 시총 증가액이 워낙 커 대세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연초 코스피(-2.41%)·코스닥(-6.76%) 지수가 하락세를 보이는 등 국내 증시가 전반적인 약세장을 보였던 가운데 재계 1위 삼성을 비롯해 2위 SK, 4위 LG, 5위 포스코, 6위 롯데, 7위 한화 등 7대 그룹사 중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모든 곳의 시총이 감소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감소액은 삼성이 22조2417억원(전년 말 대비 -3.38%)으로 가장 컸고, 그 뒤를 포스코 15조8700억원(-16.91%), LG 13조1989억원(-7.08%), SK 8조1354억원(-4.55%), 롯데 5739억원(-2.88%), 한화 5170억원(-1.71%)가 차지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년 말 대비 하락세가 뚜렷했던 반도체, 2차전지 대형주가 시총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삼성, SK, LG, 포스코 그룹의 시총 감소세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시총 변동액 -25조731억원), SK하이닉스(-6조6976억원) 등 반도체 대표주와 삼성SDI(-5조8450억원), SK이노베이션(-1조3287억원), LG에너지솔루션(-9조90억원), LG화학(-2조2590억원), 포스코홀딩스(-4조4823억원), 포스코퓨처엠(-7조2815억원), 포스코DX(-2조2653억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현대차·기아 外人 투심 강력…“ROE 개선·주주환원·낮은 PBR 강점”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종에 대한 재평가 기대감이 계속 확산 중이라며 현대차그룹 내 2강(强) 종목의 추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최근 주가 급등은 지난해 손실자산 정리로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 정부의 밸류업 정책으로 저평가 해소 기대감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임 연구원은 현대차 목표주가를 기존 26만원에서 29만원으로, 기아는 12만원에서 14만5000원으로 올려 잡았다.
증권가에선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ROE 개선을 위해 러시아·중국 공장을 매각하거나 수출 기지로 전환함으로써 손실자산을 축소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최근 보인 주가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와 기아 PBR이 각각 0.58배, 1.21배에 불과하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업종의 경우 평균적으로 PBR 0.6배에서 거래되고 있다”면서 “평균 ROE는 10%를 넘어서는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정부 지침은 강력한 주가 상승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큰손’으로 불리는 외국인 투자자의 투심이 쏠리고 있다는 점도 추가 상승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달 17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현대차와 기아에 대해 각각 8644억원, 4441억원 규모의 순매수세를 보였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증시 급등의 중심에 있던 저PBR 테마에 대한 수급 쏠림이 완화되면서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반에 대한) 숨 고르기 장세가 전개됐지만, 업종별 현물 수급에서 외국인은 여전히 저 PBR 업종으로 자동차와 금융업 순매수세를 이어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다수의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저 PBR’보다 ‘주가수익비율(PER)’이나 ‘배당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투자자에게 매력적이란 지점이 주가 상승에 더 큰 효과를 보인다”면서 현대차·기아 주가가 급등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꼽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단기간에 주가가 급격히 상승한 만큼 단기적으로 ‘조정장세’를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