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자치구서 만난 묘족,요족,장족 사람들
마음 푸근하게 여행하는 계림,양삭 인문학
[헤럴드경제,계림=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한국과 당연히 비슷할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의 옛 영토·연맹인 몽골족(고리족,부려트족), 동북3성의 만주족, 산동성 이외의 지역, 즉 중국남부-남아시아 북부에서, 우리와 닮은 구석을 여럿 발견하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중국 남부인 베트남,태국,미얀마 접경지역인 광서장족자치구-운남성-귀주성을 여행하다보면, ▷묘족, 요족 등의 마을에서 ‘신체발부 수지부모(부모가 준 내 몸을 소중히 여김)’라고 해서 머릿카락을 자르지 않는 풍속, ▷고구려의 데릴사위제, ▷동예 ‘무천’-고구려 ‘동맹’ 처럼 노래와 춤을 즐기는 축제문화, ▷기차놀이·강강수월래 닮은 공동체 놀이문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마주치는 사람과 꼭 인사를 나누는 환대문화, ▷노인공경문화가 발견되는데, 한민족의 풍속과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와락 드는 친근감= 고개 넘어 베트남, 미얀마인데, 만리장성과 두 개의 큰 강 너머, 이 먼 곳까지 우리문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건 한국인 여행자에게 역사의 상상력을 제공하고 친근감을 불어넣는다.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김인희)이라는 연구저술에 따르면, 중국 남부 일대에 거주한지 1300년 역사를 가진 900만 묘족의 첫 이주 세대는 험준한 산악 요새에 살면서도, 캔버스가 된 흰색 치마폭에, 중국 남부에서 보기 힘든 넓은 논밭 그려넣고, ‘머나먼 북쪽에서 왔다네. 눈 내리고 추운 땅에서 누런색, 파란색 두 개의 강을 건너서 왔지’라는 글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여름엔 35~40도, 겨울엔 평균 20도를 기록하는 아열대 지역인데, 털옷 파는 가게가 곳곳에 있는 것도 흥미롭다. DNA가 기억해낸 패션인가. 물론 1년엔 서너번 10도 이하로 내려갈 때가 있다.
‘KBS 스페셜’이라는 인문학기행에선 묘족들이 치우천왕의 제사를 지내고, 문화와 풍습이 우리와 흡사한 구석이 꽤 있다고 전했다. 고구려의 유민 혹은 ‘퍼스트 백제-고구리안’으로 알려진 묘족은 귀주·운남성에 약 800만명이 있고, 광서에도 100만명 가량 있다.
한편으론, 삼국사기 기록이 흥미롭다. 삼국사기 제28 백제본기6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묘(족)의 후예다”라고 쓰여져 있다.
김인희의 저술과 삼국사기 해당기록의 공통점은 ‘한민족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동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을 보면, 이동 시점의 차이가 아닌가 보여진다. 어느것이 선(先)이고, 후(後)이냐를 따질 것도 없이,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에 교류가 잦았고, 특히 신라에 의한 1차 삼국통일 당시 요하 이북에 있다가 당나라 공세를 피해 피신했거나, 강제이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합을 구실로 지역 자치에 인색한 중국공산당도 중국 남부 소수민족들의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자존심이 센 민족이라 그랬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강수월래, 치우천황 닮은 수호신= 전통을 보존하는 광서장족자치구 계림 등지의 묘족, 요족 마을에선 머리를 5m까지 기르는 어르신이 많다. 이 민족들의 풍속인데, ‘머리카락은 보물이고 신비한 힘을 지니며, 머리를 기를수록 건강해지고 오래살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묘족은 조상의 머리카락을 모아 옷을 만들기도 한다.
예의를 매우 중시하며, 언제든 누구에든 인사를 건네는 요족은 결혼할 때 신랑,신부집에서 번갈아 피로연을 하며, 신혼부부가 합환주를 마신다. 고대-중세에는 데릴사위제가 성행했다고 한다.
계림 세외도원 탐방을 마치면, 소수민족들이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청년 남성 연주단의 경쾌한 전통현악기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현지인과 한국인 여행자들은 앞사랑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신나게 기차놀이, 강강수월래를 섞어 놓은 듯한 놀이를 한바탕 즐긴다.
광서-귀주-운남 지역 소수민족들은 중국 공산당의 화장 방침과는 달리 매장형 봉분 공동묘지 문화를 갖고 있다. 비옷인 도롱이도 우리 것과 흡사하다.
계림 포도산 요족마을에 가장 마을 가장 높은 곳 동굴에 구리국(고리=구리=고구려=고려=코리아) 치우천왕을 닮은 초상화를 그려놓고 늘 제를 지내며 신성시했다.
원주민이 한민족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산동성의 서쪽에도 ‘치우’ 마을이 여럿 발견되는데, 중국 남부 일부 소수민족은 두 개의 강이 아니라, 장강 하나만 건너 이곳에 정착했을 수도 있다.
▶공산당도 못말린 소수민족들의 자주적 문화= 주지하다시피 귀주성의 만봉림은 거대한 산골짜기 오지여서 ‘숨기 좋은 곳’, ‘귀양 보내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륙 내 전쟁이나 정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은둔지로 선택했고, 이들 중 고구려 백제 유민이 상당수 포함됐으며, 독자적인 문화와 공동체 규율을 1300~2000년간 이어왔을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풍속으로는, 묘족의 경우 은(銀)성분에 살균작용이 있음을 알고 은 장식, 옥 장식을 많이 한다. 은은 흰색으로 순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혼기가 찬 남녀의 집단 맞선때 여자가 남자의 발등을 세 번 밟는데, 밟는 힘이 강하면 “이 총각 좋아요”라는 뜻이고, 밟는둥 마는둥 하면 맘에 안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사성이 매우 밝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요족은 손님이 찾아오면 볼과 귀부분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한다. 장발족은 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풍습을 갖고 있다. 우리의 무협지 ‘도사님들’, 반지의 제왕 영화에 나오는 ‘간달프’ 마법사를 연상시킨다.
▶동족, 장남에게 상속 않는 이유= 장족은 음력 3월3일을 중국 공산당의 국경일 보다 더 중시한다. 당국도 막지 못한다. 이날 청춘남녀는 마치 ‘나는 솔로’ 프로그램 처럼 강을 사이에 두고 도열해 노래로 구애를 한다. 남자1호가 먼저 여자1호에 대한 세레나데를 부르고 이에 여자1호가 답가를 하면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다. 중국 한족들은 요즘 신부값 수천만~수억원대 ‘차이리’ 문제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장족은 신부가 신랑한데 선물을 준다.
동족은 장남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신랑은 첫날밤을 신부집에서 보낸뒤엔 부인을 처가에 둔채 돌아오는데, 1년뒤에 신부를 데리러 온다고 한다. 신부가 1년간 친정에서 사는 동안 행여 다른 만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아이에겐 재산 상속을 꺼린다는 것.
동아시아 문화는 닮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그래서 역사기록만 가지고 오늘의 그들이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고 비약할 필요는 없다.
물론 계림에 가면 왠지 푸근한 마음으로 여행하게 된다. 그들의 주도로 강강술래와 기차놀이를 할 때, 더욱 신이 났던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