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상호금융, 기업대출 폭증

회사채 외면에 금리 부담…금융권 차입으로 눈길

은행 “연체율 상승으로 리스크관리” 취약 기업 조달 문턱 더 좁아질듯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악화되면서 돈줄 마른 기업들이 대출을 계속 늘리고 있다. 은행채 등에 밀려 외면받는 회사채 대신 금융권 차입을 선택했지만,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자 내기도 벅찬 기업들이 늘어나는 상황에 금융사들 또한 건전성 관리를 위해 기업별 차별화 정책에 나설 전망이다.

외면받는 회사채 시장 대신 은행권 노크…상호금융권도 급증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8월 말 기준 약 74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조원 가량이 늘어난 수치다.

기업대출이 늘어난 건 비단 은행에만 국한된게 아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상호금융의 기업대출 잔액은 2분기 말 기준 346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비중으로만 놓고보면 50.9%에 달한다. 가계대출이 부진한 틈을 타 상호금융권이 기업대출을 급격하게 늘린 결과다. 한은은 기업대출 확대 배경에 대해 “가계대출 규제 강화에 따른 가계 신용공급 제약, 부동산시장 호황에 따른 부동산 관련 대출수요 확대, 상호금융의 수익성 확보 노력 등이 맞물린 데 주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연합]

기업들이 대출시장으로 흘러간 일차적 배경은 회사채 시장 발행 환경이 쉽지 않아서다. 글로벌 긴축 기조로 채권금리가 올라간데다 각종 우량채권 발행이 이어지면서 일반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곳들일수록 외면 현상이 더욱 심했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9월 중 진행됐던 AA급 이상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는 모집물량 이상 유효수요가 몰릴 정도였으나, A급 이하 회사채에서는 미매각이 나타날 정도로 업종별 차별화가 있었다”며 “은행채 발행물량이 시장의 공급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신용채권 전반의 수요가 위축되는 형상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경기는 안풀리고…대출행렬 이어지는데 은행들은 건전성 과제 떠안아

고금리 상황에서 자금조달 창구가 제한된 기업들의 대출 행렬은 더욱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가계대출에 대한 경고등을 울리면서 기업대출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려는 은행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대출이 많이 증가한 부문을 중심으로 은행권의 대출 태도가 느슨한 부분은 없는지 중점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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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건전성이다.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이 경영환경 개선이라는 본질적인 치료 없이 대출로 버텨온 만큼 금융비용 부담을 무겁게 짊어졌기 때문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계기업은 3903곳으로 분석대상 외감기업의 15.5%를 차지, 전년보다 비중이 0.6%포인트 늘었다. 기업대출을 늘려온 은행들이 부실 대출 위험을 떠안아야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이후 각종 상환·유예조치로 금융권의 건전성 부담은 한층 높아진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7월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39%로 한 달만에 다시 반등한 상태다. 가계, 기업 전분야에서 연체율이 올랐는데, 가계 및 기업대출 연체율은 각각 0.36%, 0.41%를 기록했다. 특히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49%로 대기업대출 연체율 0.12%의 4배다.

이 때문에 기업대출을 공급하면서도 리스크관리까지 해야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차별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될 경우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들은 더욱 악화된 상황에 마주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은 가계대출에 비해 대출규모가 크고 외부환경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며 “중소기업도 회사채 발행이 가능하긴 하지만 신용도가 낮아서 시장에서 받아주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생금융차원에서의 자금 공급도 있긴 하지만 은행들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어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보다는 우량 중소 기업 위주로 대출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