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연봉 5000만원, 신용점수 900점대 초중반의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7월 1금융권서 3000만원의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았다. 그가 수십 개 금융사를 비교한 뒤 적용받은 대출금리는 7.32%. 그마저도 최근 7.7%대까지 금리가 올랐다. A씨는 “신용대출을 처음 받아봤는데, 한 달에 20만원 가까운 금액이 이자로 나가니 부담이 크다”며 “다음달에도 금리 갱신 알림이 올텐데, 휴대전화를 보기가 두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금리 시대의 장기화가 예고되며, 한때 팽배했던 연중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들고 있다. 미국의 긴축통화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계대출 확대 등을 우려한 한국은행 또한 이에 걸맞은 긴축적 대응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차주들의 고심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대출금리 상승세 지속…“신용 1등급도 연 8% 신용대출 받아”
3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은행들의 대출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5년, AAA) 금리는 4.517%(9월 26일 기준)로 올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불과 지난 5월까지만 해도 3.8%대에 머물렀던 것을 고려할 때,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기록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권의 대출금리도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요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신용등급 1등급 기준)는 연 4.00~6.44%로 8월 말과 비교해 하단이 약 0.2%포인트(p)가량 상승했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5대 은행의 주담대 최저금리는 3%대를 유지했으나, 이번주 들어 결국 4%대로 올라섰다.
아울러 같은날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요 신용대출 금리(신용등급 1등급 기준)는 연 4.56~6.56%로 지난 8월 말(4.42~6.25%)과 비교해 상·하단이 각각 0.31%p, 0.14%p 상승했다. 일부 지방은행과 인터넷은행 등에서는 신용등급 1등급 차주의 경우에도 최대 8%가 넘는 신용대출을 실행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 금리 산정 지표로 활용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가 3.9%에서 4.06%로 약 0.16%포인트 증가하는 등 상승 추이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지난 2월 이후 연 3.5%로 연속 동결된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채권금리가 상승하며, 대출금리 또한 요동치고 있다. 실제 지난달 26일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54%로 거래를 마쳐, 2007년 10월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과 함께 긴축 장기화를 시사하면서다.
대출금리 상승 요소 산적해…가계부채 ‘딜레마’에 관리도 난항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대출금리 또한 당분간 상승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국내 시장금리가 많이 오른 상황이고, 이에 따라 상승폭은 다소 둔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떨어지거나 횡보세를 보이긴 힘들다”며 “미국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내 국고채 금리 등이 연동되며 금리 상승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요소도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시장 경색 현상이 거세지며 은행들은 정기예금 등 수신금리를 올려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은행권에서 취급된 1년 이상 2년 미만 정기예금 잔액과 여타 금융권의 수신잔액은 96조2504억원 늘어났다. 약 100조원 규모의 만기가 다가오며 은행들은 수신금리 인상 및 은행채 발행으로 대응에 나섰다. 이 경우 원가(조달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격(대출금리) 인상은 피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자금조달을 위한 은행권의 과도한 경쟁 등을 관리해 부작용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출금리 상승과는 별개로 가계대출이 증가세를 유지하며, 부채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의 입장 또한 난처해지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 등을 통해 대출 문턱을 높여야 하지만, 이 경우 기존 부채의 부실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은행은 ‘2023년 9월 금융안정 상황’을 통해 “금융기관의 신용중개 기능이 과도하게 위축되어 급격한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을 촉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면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정착, 리스크관리 강화 등을 통해 가계부채 누증을 억제하는 한편, 가계부채 질적구조의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