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25 : 0, 일본과 한국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비교다.”
10월 노벨상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노벨위원회는 다음달 2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한다.
하지만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노벨상 족집게로 통하는 글로벌 조사기업 클래리베이트 예측결과에서 올해 수상자 후보로 예측되는 한국인 과학자가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2014년 유룡 한국에너지기공대 교수, 2017년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2020년 현택환 서울대 교수, 2021년 고(故)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수상은 하지 못했다. 반면 지금껏 노벨과학상을 25명 배출한 일본은 혁신적 약물전달법을 개발한 가타오카 가즈노리 도쿄대 명예교수가 화학상 유력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이처럼 기초과학 분야에서 잇따라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던 비결로 기초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한 장기간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노벨과학상 종합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노벨과학상을 다수 배출한 배경에는 ▷미래를 내다본 연구과제 선정 등 정부의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 ▷어린시절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 고취 ▷신진연구자 때부터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환경 제공 ▷유학이나 해외 연구활동 경험 등인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첫 노벨과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교수는 중간자이론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일본에서는 기초과학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힘든걸까.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기초과학보다는 추격형 응용과학에 집중해왔고 무엇보다 장기 대형연구보다는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연구환경을 이유로 꼽는다.
한국연구재단이 분석한 ‘노벨과학상 수상자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 77명은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연구 시작에서 수상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2년이다.
이 때문에 장기 연구 환경을 마련하고 과학자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연구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해마다 반복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내 연구자들은 장기간 대형 연구과제보다는 3년 이내의 단기 소형 과제 수주에만 내몰려 있다. 장기적이고 창의적 연구는 사실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계 관계자는 “국내 과학기술계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 매몰돼 단기 성과 위주 과제로 과학기술자를 옭아매고 있다”며 “원천기반 연구, 기초 연구는 애초에 꿈도 꾸지 못하고 3P(논문, 특허, 기술이전)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연구과제는 거의 매년 정량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특히 과학기술 논문(SCI) 한 편당 피인용 횟수는 하위권을 맴도는 등 질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한국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단 한명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기초 원천기술에 제대로 된 장기 투자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부가 내년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 25조9000억원에서 16.6% 줄어든 21조 7000억원으로 삭감하고, 이중 기초과학연구 예산은 6.2%(1537억원) 줄이기로 하면서 노벨과학상 수상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베르겐 헬게센 스웨덴 노벨재단 총재는 “노벨상 수상은 장기적 투자와 지원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과학투자와 네트워크가 기반이 돼야 개인 성과와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분야별로 1천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3억4천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이는 전년도(1천만 스웨덴 크로나)보다 10%가량 증액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