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안내견 사업 30주년
이건희 회장 ‘반려견 사랑’서 시작
“안내견 사업, 사회 복지 마인드 높일 것” 확신
[헤럴드경제(용인)=김민지 기자] “삼성이 개를 길러 장애인들의 복지를 개선하거나 사람들의 심성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 국민 전체의 의식이 한 수준 높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두텁고 완강한 고집과 편견 때문에 안내견들이 더 이상 풀이 죽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삼성은 계속 안내견들을 내보낼 것이다.”(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첫번째 사회공헌 사업인 안내견학교가 30주년을 맞았다. 평소 개를 사랑했던 이 회장의 반려견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30년 간 이어지며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30년간 총 280마리 분양, 2000가구 참여
19일 삼성은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퍼피워커,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등 안내견의 전 생애와 함께해 온 이들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여사,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IGDF) 회장,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시각장애인 파트너이기도 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1994년 안내견 ‘바다’ 분양을 시작으로, 매년 12~15마리를 무상 분양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80마리를 분양했으며, 현재 76마리가 안내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30년간 안내견 봉사에 참여한 가구만 2000여 곳이 넘는다. 안내견 자원봉사는 ▷생후 약 2개월된 강아지를 일반 가정에서 1년간 기르며 사회화 훈련까지 하는 퍼피워킹 ▷안내견학교 견사 관리를 돕는 자원봉사 ▷은퇴 안내견의 노후를 돌보는 은퇴견 입양 봉사 ▷번식견을 기르며 우수한 안내견의 지속 탄생에 기여하는 번식견 입양 봉사 등이 있다.
삼성안내견학교는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안내견학교다. 일반인 대상으로 한 시각장애 체험 행사 등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02년 세계안내견협회(IGDF)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IGDF) 회장은 삼성의 30년에 걸친 노력을 평가하는 감사패를 전달했다. 손튼 회장은 “삼성은 지난 30년간 진정성있는 노력으로 안내견을 훈련시켜왔다”며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세계적인 기관으로 성장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안내견 분양, 복지 마인드 한 수준 높일 것”
1993년 9월 문을 연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직후 설립됐다. 이 회장의 첫 사회공헌(CSR) 사업으로, 초일류 삼성을 향한 변화의 첫 걸음을 CSR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진정한 복지 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이 회장의 평소 철학이 담겼다.
이 회장은 안내견 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반려견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미 발간된 에세이에서 “첫번째 목표는 안내견의 직접 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려 독립된 삶의 의지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안내견 분양 사업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인 모델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세 번째는 퍼피워킹이라는 자원 봉사 위탁 사육 프로그램을 확산시켜 일반 시민들을 안내견 사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더 나아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전파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안내견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비록 지금은 현실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거나, 바보라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안내견 사업이 우리 사회의 복지 마인드를 한 수준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표현했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개를 무척 아낀 진정한 반려인으로 유명하다. 해외 잡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 회장과 반려견이 함께 사진을 찍은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릴 때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난 그는 자서전에서 혼자 있다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다고 회고했다. 훗날 “나의 첫사랑은 페키니즈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개는 1986년부터 키운 ‘벤지’라는 이름의 요크셔테리어라고 한다. 이 회장이 환갑 때 제작한 ‘이건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사진첩에는 손자·손녀들 다음으로 벤지가 등장한다고도 전해진다. 또 진돗개를 정말 좋아했던 이 회장은 10년 넘는 연구와 현지답사 끝에 1983년 진돗개를 세계견종(犬種)협회에 공식 등록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세계 최초·유일서 벤치마킹 대상까지
전례없이 시작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30년이 지나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성장했다. 1993년 설립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단일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안내견학교다. 설립 당시에는 기업이 안내견학교를 운영하는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우려가 컸다. 세계안내견협회(IGDF) 역시 기업이 운영하는 안내견학교에 관한 정관 규정이 따로 없었다.
이후 세계안내견협회는 1999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공식 안내견 양성기관으로 인증 협회 정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삼성의 안내견 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확신한 셈이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2000년대 유럽과 미국의 선진 안내견학교를 찾아 ‘클리커훈련법’ 등을 배우고 안내견 훈련 프로그램을 체계화했다. 클리커훈련법은 딸깍(클릭) 소리를 내는 훈련 도구와, 간식·칭찬 등 보상을 이용해 점차 딸깍 소리만으로 안내견이 훈련사의 지시를 따르도록 훈련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전세계 각국에서 방문해 벤치마킹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2008년 대만 핑둥과기술대학을 시작으로 일본 간사이맹도견협회, 홍콩맹도견협회 등에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아 방문해 안내견 양성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