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 우유 수입량 5년새 3배 이상 증가
다만 일부 소비자 “‘생산·품질’ 정보 미노출로 구매 꺼려”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수입 멸균 우유는 사본 적 없어요. 국내산 우유가 비싸긴 하지만 마셨을 때 배도 안 아프고 맛있거든요. 이제 3000원이 넘어서 예전처럼 자주는 못 마실 것 같네요.”
18일 오후 7시께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 우유 코너를 찾은 이철규(68)씨는 서울우유 ‘내 속이 편안한 우유(900㎖·3350원)’ 1팩을 집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바로 윗 칸에는 독일산 ‘올덴버거 멸균 우유(1ℓ·2380원)’가 진열돼있었다. 이씨가 구매한 우유보다 용량이 100㎖ 더 많고, 가격도 30%가량 저렴한 제품이었다. 그는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이라면서도 “국내산 우유니까 믿고 먹는다”고 부연했다.
10월 원윳값 인상을 앞두고 값이 저렴한 수입산 멸균 우유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는 ‘생산’과 ‘품질’에 대한 우려로 기피하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다.
수입산 멸균 우유 판매량 폭증에도…일부 소비자, “국내산 우유 계속 마실 것”
우윳값이 오르면서 흰 우유 대체재로 수입산 멸균 우유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19일 G마켓에 따르면 9월 1일부터 18일까지 수입 멸균 우유 판매량 신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845% 폭증했다. 같은 기간 일반 우유 판매량 신장률이 20% 증가한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수입량도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1월~8월 기준) 사이 국내 수입산 멸균 우유 수입량은 ▷2019년 7133t ▷2020년 7152t ▷2021년 1만4275t ▷2022년 2만1850t ▷2023년 2만5389t으로 증가했다. 5년 사이 멸균 우유 수입량이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다만 이날 저녁 찾은 대형마트 우유 코너(멸균 우유 포함)는 비교적 한산했다. 이미 마트에서는 1ℓ, 900㎖ 용량의 국내산 신선 우유 제품이 3000원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우유를 집었다가 다시 진열대에 두고 떠나거나, 제품별로 가격을 꼼꼼히 비교해보는 소비자도 있었다. 30여분 동안 흰 우유를 사가는 소비자 중 90% 이상은 국내산 신선 우유를 선택했다.
20% 할인 중인 마트 PB우유(900㎖·2176원)가 진열된 칸은 텅 비어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마트 PB우유 1팩을 집어든 김소리(35)씨는 “맛은 다른 우유랑 똑같은데 가격은 훨씬 저렴해 좋다”고 했다.
진열대 맨 윗 칸에는 독일산 멸균 우유(1ℓ·2380원)가 쌓여있었지만, 수입산 멸균 우유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유를 진열하던 마트 직원도 “수입산 멸균 우유를 찾는 고객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멸균 우유 수요 증가에도…“‘생산’·‘품질’ 우려로 구매 꺼리는 소비자 있어”
수입산 멸균 우유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원유의 ‘생산’과 ‘품질’에 대한 우려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해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가 수입산 멸균 우유 구입 시 꺼리는 요소로 ▷생산/제조과정에 대한 정보 없음(31.9%) ▷원유 품질에 의심이 감(28.0%) 등이 꼽혔다.
실제로 수입산 멸균 우유는 제품을 통해 원유 등급 및 품질을 확인할 수 없다. 반면 국내산 신선 우유의 경우 원유의 등급과 품질을 확인할 수 있고, 멸균 우유도 국내산 원유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어느정도 확보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국내 원유 1등급 기준인 ‘체세포수(㎖당 20만개 미만)’와 ‘세균수(㎖당 3만개 미만)’는 타 낙농선진국과 동일하거나 좀 더 엄격한 수준이다.
마트에 진열된 국내산 신선 우유 제품 겉면에는 ‘세균수 1A등급’, ‘체세포수 1등급’ 등과 같이 원유의 등급을 알 수 있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반면 수입산 멸균 우유에는 ‘멸균 방법’과 ‘원유 100%’라는 기본적인 정보 외에는 따로 표기된 내용이 없었다.
“한국 오기까지 평균 1~2개월 소요…유통 과정에서 품질 저하 가능성 우려”
수입산 멸균 우유는 소비기한은 평균 1년으로 비교적 긴 편이지만, 유통 과정이 길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소비기한은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진희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기획관리팀 과장은 “수입산 우유가 한국으로 오기까지 평균 1~2개월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제조일자에서 3개월 정도 지난 제품도 많은데, 소비기한은 1년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적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마트에서 구매한 독일산 멸균우유 역시 제조일자(2023년 7월 3일)가 2개월 전이었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선적 과정에서의 품질 저하 우려도 있다. 뜨거운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는 등 우유의 품질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수입산 우유에 대해 멸균 처리 전 원유 등급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전부 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최종제품이 소비자한테 판매되기 위해서는 수입산도 국내 기준에 맞아야 (안전하게) 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