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 키워드는 ‘좋은 재판’
그러나 사상 첫 미제사건분포지수
일부 인사 두고 법관 공식 문제제기
형사소송전자화 최대 성과 꼽아
상고제도 등 미완과제 남아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 6년 임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좋은 재판’이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좋은 재판의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필요한 개혁의 과업을 차분하고 진중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 동안 장기미제 사건이 급증하고, 재판에 대한 정치 편향성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사상 첫 미제분포지수 마이너스(-)…땜질식 처방 그쳐
김 대법원장 임기 말 화두는 미제사건 적체였다. 소송을 내더라도 수년째 1심 결론이 나지 않아 사건 처리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는 것이다. 실제 법원 통계에 따르면 민사합의 사건이 취임 전인 2016년 3만4160건에서 임기 중반을 지난 2021년 4만7720건으로 1.39배 늘었으나, 2년 이상 오래된 ‘악성 미제’는 같은 기간 2355건에서 5113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급기야 2021년부터 사상 처음으로 ‘미제분포지수’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미제분포지수는 장기 미제사건이 적체될수록 숫자가 낮아진다. 특히 2년을 초과한 사건들이 쌓일수록 급격히 하락하는 구조다.
미제사건이 늘어나는 것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사건 자체가 과거에 비해 복잡해진 경향이 있고, 사회 인식 변화와 세대교체로 인해 과거처럼 ‘하루 16,17시간 뼈를 갈아 일하라’는 분위기도 옅어졌다. 법원 민사 합의부 배석판사들이 1주일에 3개 사건만 처리하는 암묵적인 경향도 굳어졌다. 법관 인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적체 현상은 김 대법원장 임기 들어 급격히 악화됐다는 게 법조계 진단이다. 한 부장판사는 “수년간 걸쳐왔다기보다 최근 4,5년 사이 집중적으로 한 번에 나타난 현상”이라며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는데 마치 터지기 직전의 댐처럼 있다가 한순간 무너진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 판사들은 장기 미제를 처리하기보다, 쉬운 사건을 빨리 떼는 식으로 미제율을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 형사재판의 경우 구속 기간이 최장 6개월이기 때문에, 통상 이 기간 내에 선고를 한다. 구속기간 만료로 피고인을 석방했다가, 실형을 선고해 다시 법정구속을 하는 데 판사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민사사건은 이러한 부담이 없다.
김 대법원장이 추진한 인사정책(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따른 동기 부여가 떨어진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된다. 과거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그 중에서 법원장이나 대법관이 나오는 구조에선 부장판사들이 배석판사들을 이끌고 사건을 빨리 떼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승진 개념 자체가 사라지면서 동기가 부여될 유인책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초임의 경우 해외연수 선발 시 선호하는 국가로 가고 싶어 하니 어느 정도 경쟁이 있다가 지방법원 부장판사쯤 되면 선발성 인사가 거의 없어진다”며 “그러다보니 사기가 침체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도 심각성을 드러내면서 일부 개선책들을 내놨다. 지난해 3월부터 민사소송 단독재판과 합의재판 사물관할 구분을 소가 2억에서 5억으로 높여 단독 재판부에 배당을 늘렸다. 재판부가 65.4개 증설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올해 미제 사건을 중점 처리하는 전담 법관 2명을 배치했다. 대법원은 사건 기록검토, 법리연구, 판결문 초안 작성 등 보조역할을 하는 재판연구원(로클럭)도 매해 증원하고 있다. 다만 핵심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꼽히는 법관 증원은 아직도 국회 문턱에 막혀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재판부 인사 문제…전국법관대표회의서 첫 공식 문제제기
특정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부 인사를 둘러싸고 정치 편향성 시비도 일어났다. 김 대법원장 측근으로 꼽히는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2018년 2월부터 3년간 재임하면서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 등을 맡은 주요 재판부에 특정 부장판사들을 유임시켜 법원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당시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김미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보직기한인 3년을 넘겨 4년째 근무하도록 유임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을 맡은 윤종섭 부장판사는 무려 6년이나 중앙지법에 근무하도록 했다.
지난해 4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장의 인사 문제를 두고 처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년인 법원장 임기를 깬 예외적 인사가 문제가 됐다. 당시 법원 내부에선 2019~2022년 재임한 김문석 전 사법연수원장과 박종택 전 수원가정법원장, 2018~2021년 근무연한을 넘겨 재직한 민 전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등에 대한 인사에 관해 비판이 나왔다.
김 전 연수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돼 무죄를 받은 신광렬·조의연 부장판사 대상 법관징계위원회에 참가해 논란이 됐고, 박 전 법원장은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맡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민 전 원장은 김 대법원장의 최측근 인사로, 마찬가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진상조사에 참여했다. 2020년 형사합의부 판사들을 모아놓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형사전자소송 임기 내 성과꼽아…‘상기될 만한 업적 부족’ 평가도
김 대법원장은 임기 중 최대 성과로 형사전자소송 실시를 꼽았다. 2021년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이듬해 작업이 시작돼 오는 2026년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사소송에서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0년부터 문서가 전자화돼 기록·열람 복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다만 최대 업적이라 꼽은 형사전자소송 또한 이 전 대법원장 시절 추진됐던 정책의 일환이란 점에서 김 대법원장의 업적이라 보기에는 어렵다는 법조계 목소리도 나온다. 행정처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용훈 원장님 시절에 했던 업적들의 일환”이라며 “민사소송 전자화는 당시 법원 비용으로 충당하면서까지 기틀을 많이 잡아뒀었다”고 평했다. 김 대법원장이 형사전자소송을 꼽은 것은 그만큼 상기될 만한 업적이 부족하다는 취지다.
김 대법원장 시기 추진하다 그친 상고제도 등 과제들도 여럿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설치안을 추진했지만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지며 논의 자체가 불발됐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사에서 실정에 알맞은 상고제도 도입을 약속했지만 미완에 그쳤다. 상고제는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 수를 18명으로 늘리고, 전원합의체를 대법관 각 8명과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공법·사법 합의체로 쪼개 운영하는 방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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