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내집마련 취지 달리 ‘지옥주택조합’ 오명

서울시, 지난 4~5월 지주택 사업장 표본 실태조사

서울 7곳 사업장 위반건수만 60건

행정절차 미이행 16건·정보공개 미흡 14건 등 적발

국토부, 이달 내 지자체들과 지주택 제도개선 간담회

지자체 의견 수렴해 개선 방향 정해지면 주택법 개정

450억 종잣돈과 함께 날아간 내집마련 꿈…지옥이 된 지주택 수술대 [부동산360]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 A씨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지역주택조합(지주택) 방식으로 25층짜리 아파트를 짓겠다며 2016년부터 약 3년간 조합원을 모집했다. 추진위원장을 맡은 A씨와 지주택 업무대행사 대표 B씨, 조합원 모집대행사 대표 C씨는 토지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에도 수년 내 아파트 입주가 가능하다고 허위 광고해 조합원을 모았다. 이들이 조합원 477명으로부터 가로챈 계약금만 239억원이다. 경찰 고소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이 낸 계약금까지 합치면 피해금액만 450억원에 달한다. 이밖에도 B씨는 업무대행비 및 사업비 42억원을 횡령하고 A씨와 함께 토지 동의율이 허위 기재된 서류를 신탁사에 제출해 부당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1년여 넘게 이어진 재판 끝에 올해 초 A씨는 징역 12년과 벌금 550만원, B씨는 징역 30년과 벌금 62억1909만원, C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무주택자들이 조합을 꾸려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주택이 당초 취지와 달리 각종 사기범죄에 노출되자 정부와 지자체가 대대적인 제도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지주택은 갖은 구설수에 ‘지옥주택조합’, ‘원수에게 권하는 방식’ 등의 오명까지 받고 있는 상태로, 그동안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사업 운영의 투명성이 낮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급기야 최근 이뤄진 서울 사업장 7곳에서만 불법행위 및 규약 위반사항 등이 6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4~5월 두 달간 서울 내 118곳의 지주택 사업장 중 7곳을 선별해 시·구·전문가가 참여한 표본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서울시는 지난 2021년부터 지주택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는데 표본 실태조사를 실시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 보다 내실있는 실태조사를 시행하기 위해 조사 매뉴얼을 개선한 시가 이를 전수조사에 적용하기에 앞서 샘플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표본 실태조사 결과 사업장 7곳에서 ▷행정절차 미이행 16건 ▷정보공개 미흡 14건 ▷회계처리 부적정 9건 ▷용역계약 부적정 6건 ▷기타 15건 등 총 60건의 주택법령, 조합규약 등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이 결과를 두고 사실상 복마전 운영을 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사업장이 속한 자치구에 통보했고, 자치구별 행정조치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투명한 사업추진 및 조합원 주도 의사결정을 유도하고자 지주택 조합별 홈페이지에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도록 요청했다.

아울러 조사를 통해 정기총회 미개최, 정보공개 미흡을 비롯한 현행법령 위반 뿐 아니라 조합 선거·회계·용역 계약 등 세부규정이 부재하는 문제점이 발견된 만큼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워낙 지주택 관련 민원이 많고 운영상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개선책에 대해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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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연합]

지주택 방식은 무주택자 또는 1주택(전용면적 85㎡ 이하) 소유주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한 뒤 사업시행 주체가 돼 주택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지주택 조합설립인가 기준은 80% 이상의 토지사용권원과 15% 이상의 소유권 확보다. 한때 지주택은 시세 대비 저렴하게 내집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주택을 지을 토지를 확보해야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업 지연, 허위·과장 광고, 과도한 추가분담금, 조합 운영상 횡령·배임, 사기 등의 리스크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로 지주택 사례와 같이 ‘토지 사용 동의율 80% 확보’로 속여 조합원들의 돈을 편취한 사기범죄 사례도 다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본격적인 지주택 제도개선 절차에 착수했다. 국토부는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지주택 사업 현황, 문제점, 개선방안 등을 취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달 내 지자체와 지주택 제도개선 논의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개선방안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지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우선 지자체 의견을 수렴한 뒤 방향을 설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자체들은 그간 발생한 지주택 관련 사건사고들이 관리·감독 미흡, 사업 운영 투명성 부족 등 조합 운용상의 원인이 큰 만큼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토부는 지자체 의견 수렴을 거쳐 제도개선 방향이 확정되면 주택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목표다. 앞서 지난 5월 국토부는 규제개선 과제를 발표하면서 올해 하반기 내 주택법 개정을 통해 지주택 사업장을 지자체의 지도·감독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간 사업계획 승인 전 지주택은 사업 주체에 포함되지 않아 위법행위를 저질러도 지자체가 지도·감독을 맡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주택 관련 민원을 분석해보면 사업 피해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지자체와의 간담회를 거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법 개정을 통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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