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연설서 “반란은 어쨋든 진압됐을 것”

‘경질 요구’ 쇼이구 국방 장관에 대해선 신뢰 확인

프리고진 “정부 전복 꿈꾼 적 없어…항의 시위였을 뿐”

체제 장악력 회복 가능성엔 회의적 전망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 무장반란 이틀만인 26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A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 무장반란 이틀만인 26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가 일단락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을 중심으로 단단한 결속을 이어갈 것을 촉구했다. 단결을 강조해 흠집이 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연설 자체가 오히려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존재감을 키워준 꼴이란 푸틴 대통령의 통제력 회복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하루 만에 끝난 것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의 단합이 내부 불안을 조성하려는 협박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단계의 행정부와 입법부가 반란에 맞서 단결했으며 공공 및 종교 단체가 함께 헌법 질서를 지지하는 확고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며 “사실상 러시아 사회 전체가 단결해 모두를 결집시켰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을 주도한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와 그들의 서방 후원자, 그리고 모든 국가 반역자들은 러시아 인들이 서로 싸우기를 원했다”며 “그들은 전선과 소위 반격 과정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복수를 꿈꿨지만 계산 착오였을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프리고진 등 반란을 주도한 세력을 ‘분열의 상징’으로 모는 방식을 통해 역으로 자신을 전쟁 와중의 러시아를 단합시킬 구심점으로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 주동자들은 정의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사태에 대한 응징을 예고 했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프리고진에 대한 기소 절차 중단을 약속했지만 러시아 국영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이 맡은 무장 반란 혐의 관련 수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러시아의 내분과 유혈사태를 막았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그는 바그너 반란군이 별다른 저항 없이 모스크바 200㎞ 이내까지 빠르게 진군한 것에 대해 “사태 처음부터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하도록 지시를 내렸다”면서도 “무장 반란은 어떤 경우든 진압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리고진 휘하의 바그너 전사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모습도 보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멈춰서 유혈사태로 향하는 선을 넘지 않은 바그너 그룹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감사한다”며 “그들 대부분이 러시아의 애국자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벨라루스로 가려는 바그너 그룹 구성원에 대해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하며 “국방부와 계약을 하거나 집으로 가도 좋다. 아니면 벨라루스로 가도 된다”고 확언했다.

그런가하면 러시아 정보기관은 이번 무장 반란에 미국 등 서방이 연루됐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사태 원인을 외부 적대세력으로 돌리고 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며 “이것은 러시아 체제 내의 투쟁의 일부”라며 선을 그었다.

연설 이후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및 러시아 보안기관 책임자들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쇼이구 장관을 비롯해 안톤 바이노 대통령 비서실장,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장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장, 빅토르 졸로토프 국가근위대 대장,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연방수사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에게 반란 관련 대처에 감사하는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분석하고 현재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쇼이구 국방 장관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함께 프리고진이 축출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프리고진은 전날 자신의 텔레그램에서 푸틴 대통령이 쇼이구 장관을 경질하고 알렉세이 듀민 툴라 주지사를 대신 임명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쇼이구 장관이 러시아 서부군관구를 방문해 전황에 대해 보고를 듣는 장면을 공개한 데 이어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그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라 마시코트 랜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푸틴의 최우선 순위는 충성심과 안정성”이라며 “프리고진이 러시아를 떠나면 쇼이구 장관의 입지가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그의 의도대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 크렘린 연설작가에서 정치 컨설턴트로 변신한 압바스 갈랴모프는 “푸틴 대통령의 연설은 프리고진의 힘을 강조하기만 했으며 성과는 극도로 미약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프리고진은 11분 길이의 음성메시지를 통해 이번 반란이 러시아 정부의 전복을 꾀한 것이 아니라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항의 시위 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불의로 인해 행진을 시작했다”면서 “바그너 그룹은 7월 1일 이후로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협상 결과 반란을 중단하고 벨라루스로 망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일 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난 뒤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