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열분해유 순환경제 핵심

‘석대법’상 열분해유 투입 불가

규제샌드박스만으로 역부족

“쓰레기 플라스틱으로 만든 원유 왜 못 써요?”…‘착한 기름’ 막는 낡은 제도 [비즈360]
SK이노베이션 울산CLX 구성원들이 최초 공정 투입을 위해 열분해유를 싣고 온 차량(탱크 트럭)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SK이노베이션 제공]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정유사들이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원유로 만드는 ‘열분해유’를 도입해 친환경 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진화하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제도에 묶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열분해유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순환경제 핵심 기술임에도 현행법 상 석유 공정에 투입 시 불법으로 간주된다. 정유사들은 현재 규제 샌드박스라는 우회로를 통하고 있지만 열분해유 확대에는 제한적이다. 이에 정유사들의 친환경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정유·석유화학 공정에 열분해유를 투입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절차를 거치고 있다. 열분해유는 폐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만든 원유를 말한다. 기존에 소각하던 폐플라스틱이 석유화학제품으로 탄생한다는 점에서 순환경제 핵심 기술로 꼽히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업계 최초로 울산컴플렉스(CLX)·석유화학 공정에 열분해유를 투입한 바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절차를 거쳐 올해 1만3000t의 열분해유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S-OIL은 올해 3월 열분해유를 기존 석유정제 공정에 투입해 연료유, 석유화학 원료로 생산하고자 실증 특례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열분해유는 친환경 측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정유·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때 원유 대신 열분해유를 투입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 플라스틱의 경우 일반 원유가 아닌 열분해유를 사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2배가량 감소한다.

“쓰레기 플라스틱으로 만든 원유 왜 못 써요?”…‘착한 기름’ 막는 낡은 제도 [비즈360]
HD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공장 전경. [HD현대오일뱅크 제공]

친환경성이 검증됐음에도 규제 샌드박스라는 우회로를 거치는 이유는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이하 석대법)에 따르면 석유대체연료에 폐기물을 재활용한 열분해유는 포함돼 있지 않다. 석대법에서는 “석유대체연료란 석유제품 연소 설비의 근본적인 구조 변경 없이 석유제품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연료(석탄과 천연가스는 제외한다)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규제샌드박스가 없다면 정유사들은 열분해유를 석유 공정 원료에 원칙적으로 투입할 수 없는 것이다. 법 제정 당시 정유·화학 제품 핵심 원료가 원유라는 현실을 반영했다.

정유업체들은 규제 샌드박스로는 열분해유 도입량을 대폭 늘리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열분해유 도입량을 늘릴 때마다 규제 샌드박스로 또다시 허가받아야 하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HD현대오일뱅크는 열분해유 도입량을 2025년 7만t, 2030년 20만t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유기업들의 열분해유 도입 확대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하는 셈이다.

정유사들의 석대법 개정 요청에도 정치권은 감감무소식이다. 현재 석대법 개정 관련해 입법 발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장자원부 주도 아래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초 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이 있을 거란 전망은 있지만 실제 법이 바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열분해유 투입으로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순환경제 활성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른 시일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정길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이 열분해유를 주로 생산한다”며 “석유대체연료로 열분해유가 인정된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이전보다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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