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넘어 북미 프리미엄 車 시장서 두각
제네시스·벤츠·BMW ‘3강 구도’로 재편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 평가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올해로 브랜드 론칭 8년차를 맞은 제네시스가 국내는 물론 글로벌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BMW 등 독일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이른바 ‘독일 3사’로 굳어진 고급차 시장 3강 체제를 깨뜨리고, 판매량 1위에 오랐다. 특히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전기차(EV)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지난달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모두 1만2428대가 팔렸다. 같은 기간 벤츠와 BMW는 절반 수준인 6292대, 6036대씩을 팔았다. 올해 1~5월 누적 판매량에서도 제네시스는 5만5401대가 팔리며 프리미엄 완성차 시장에서 1위에 올랐고, BMW와 벤츠가 각각 3만6대, 2만7420대씩을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특히 한때 벤츠, BMW와 더불어 ‘잘 나가는’ 독일 3사 대열에 이름을 올렸던 폭스바겐그룹 산하 아우디는 올해 누적 판매량이 단 8289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제네시스 중형 SUV ‘GV70’이 기록한 판매량(1만1975대)과 비교해 3000대 이상 모자란 수치다.
지난해 북미시장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36% 늘어난 5만6410대가 팔리며 일본 닛산의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를 제쳤다. 업계에서는 제네시스가 연내 글로벌 누적 100만대 돌파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네시스 중심의 고부가 가치 차종 판매량 상승세는 현대자동차그룹 수익성 개선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현대차와 기아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6조4600억원으로 토요타그룹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영업이익률도 10.5%로 지난 2012년 2분기(10.9%)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제네시스의 위상이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2015년 11월 브랜드 론칭 이후 수년간 상대적으로 부족한 라인업과 인지도에 발목이 잡혀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실제로 2019년 당시 제네시스 대형 세단 ‘G80’(2만2284대)과 플래그십 세단 ‘G90’(1만7542대) 판매량을 모두 더해도 벤츠 중형세단 ‘E클래스’(3만9782대) 판매량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네시스는 2020년 브랜드 첫 SUV ‘GV80’의 성공적인 출시를 발판 삼아 두 번째 SUV ‘GV70’까지 연이어 흥행시키며, 수년간 수입차 업체에 내줬던 프리미엄 시장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지난 2021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교통사고 이슈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같은 해 2월 타이거 우즈는 GV80을 타고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도로를 달리다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USA투데이 등 현지 언론을 통해 전면부와 후면부가 크게 파손된 차량 사진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타이거 우즈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전한 차'라는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실제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데이비드 하키 회장은 “타이거 우즈를 살린 것은 GV80에 장착된 에어백이었다”며 “10개의 안전 표준 이상의 에어백과 운전자 신체를 고정해 충격을 완화하는 무릎 에어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제네시스는 IIHS가 발표한 충돌 평가에서 GV80은 물론 G80, G90이 잇달아 가장 안전한 차량에 부여되는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등급을 받으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아울러 제네시스의 가파른 성장에는 브랜드 론칭 때부터 ‘홍보맨’을 자처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한몫을 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 회장은 제네시스 론칭 이후 럭셔리 브랜드 출신 전문가를 잇달아 영입하고, 북미 최대 스포츠 축제인 슈퍼볼 광고와 미국 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 후원 등 인기 스포츠와 연계한 마케팅을 진두지휘하며 제네시스 알리기에 적극 나섰다.
2019년 2월에는 미국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PGA투어 커미셔너 제이 모나한, 제네시스 오픈 대회 운영을 담당하는 타이거 우즈 재단과 만나 제네시스가 타이틀 스폰서로 후원하는 ‘제네시스 오픈’을 ‘인비테이셔널’ 대회 수준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체결해 눈길을 끌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최근 몇 년 사이 현대차의 가장 큰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했다는 것과,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국내를 넘어 북미 시장 등 글로벌 무대에서 일본 렉서스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이거 우즈의 사고 이슈 등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품 완성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며 “대중 브랜드와 차별성을 확실하게 둔 고급화 전략이 가파른 성장세에 가장 큰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