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에코프로 형제주’를 비롯해 증시 과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증권사들이 투자의견을 줄줄이 낮추고 있다. 리서치센터는 분석 대상이 고객이 되는 증권사 영업 구조로 인해 투자의견 하향을 꺼려왔지만, 수급 쏠림이 나타나며 더 이상의 추가 상승은 어렵다는 판단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총 34건의 증권사 보고서가 총 26개 종목에 대해 투자의견을 낮춰 매수 권고를 철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9개 종목에 대해 10개 보고서가 투자의견을 낮춘 것에 비하면 각각 세 배 정도씩 늘어난 셈이다.
투자의견 강등이 집중된 종목은 역시 2차전지 대장주인 에코프로비엠이었다. 지난달 BNK투자증권을 시작으로 교보증권, 하이투자증권, 삼성증권, 유안타증권, 대신증권 등 6곳이 매수 의견을 거두고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낮췄다.
유진투자증권은 아예 매도 의견을 냈다. 한병화 연구원은 지난 3일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에코프로비엠의 성장이 우리 회사의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가정하에 20만원 이상의 주가는 고평가라고 판단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에코프로에 대해서도 매도 보고서가 나왔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2일 보고서에서 “현재 시가총액이 5년 후 예상 기업가치를 넘어섰다”며 “동종업계 기업 중 미래에 대한 준비가 가장 잘 된 위대한 기업이지만 (당시 시점 기준) 좋은 주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증권사들은 ‘에코프로 형제주’뿐 아니라 POSCO홀딩스와 한미반도체, 한미약품 등에 대해서도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여건)보다 일시적 수급 쏠림현상으로 현재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내렸다.
통상 투자의견은 목표주가 대비 현 주가의 상승 여력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증권사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해당 종목의 코스피 대비 향후 6∼12개월 기대수익률이 10% 이상일 때는 매수를, -10∼10%일 때는 중립(보유)을 제시한다. 향후 기대수익률이 마이너스일 경우는 매도 의견을 낸다.
국내 증시는 연초부터 지난달까지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2차전지 등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과열 양상이 나타났다. 이에 주가 상승 여력이 줄어든 종목들을 중심으로 증권사들이 대거 투자의견을 낮춘 걸로 보인다. 그밖에 아모레퍼시픽이나 대한항공, CJ ENM 등은 업황 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일부 증권사가 ‘매수’의견을 철회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최근과 같은 투자의견 줄하향이 이례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애널리스트들이 자유롭게 투자의견을 낮추지 못하는 배경 중 하나는 증권사의 영업구조에 있다. 증권사로서는 기업들이 분석 대상인 동시에 기업금융(IB) 사업파트의 주요 고객이다 보니 고객사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투자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또 보고서를 작성하는 리서치센터는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부가 아닌 만큼, 큰 수익을 내는 IB 사업부보다 조직 내 ‘입김’이 약하다는 점도 한계다. 이렇다 보니 국내 증권사의 장밋빛 전망 행태는 국내 기업에 상대적으로 잦은 매도 의견을 내온 외국계 증권사와 대비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국내 기업들과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적기 때문에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라며 “그들도 자국 기업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투자의견을 낸다”고 밝혔다.
또 “외국계 증권사에 비해 국내 연구원들의 신상 정보가 많이 노출돼 있고 부정적인 투자의견을 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의 항의와 민원, 심지어 당국의 조사까지도 감당해야 한다”며 “단순히 연구원 개인의 소신이 부족하다고 탓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