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특별당규 제정 권리당원 투표 시작
민주당 “시스템 공천 틀 유지하며 진일보”
원외인사·개딸 등 반발 “기득권 방탄 룰”
단수 추천 기준·3선 출마 금지 제외 등 문제
“당원투표 실시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아”
개딸 주장 힘 실어주는 친명계 지도부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에 적용할 '공천 룰'의 확정을 놓고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 이번에 마련된 공천 룰은 기존 공천 룰과 사실상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새로운 공천 룰을 ‘기득권 방탄’이라고 주장한다. 정치 신인의 공천을 막고, 현역 의원의 공천 가능성을 높이는 조항이 담겼다는 비판이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부터 다음날까지 내년 총선에 적용할 공천 룰인 ‘특별당규 제정안’에 대한 권리당원 투표를 진행한다. 이번 공천 룰은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이개호 민주당 의원이 단장을 맡은 공천TF팀에서 마련했다.
제정안은 지난 총선 특별당규의 기본 골격을 유지했다. 이해찬 전 대표 시절 만들었던 ‘시스템 공천’의 틀을 그대로 뒀다는 것이다. 경선방법을 국민 50%와 당원 50%를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 원칙을 견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천심사 역시 지난 총선 기준을 준용하여 ▷정체성 ▷기여도 ▷의정활동능력 ▷도덕성 ▷당선가능성을 종합 심사한다.
지난 공천 룰과 비교해 바뀐 점은 우선 도덕성 기준의 강화를 꼽을 수 있다. ‘학교 폭력’ 범죄를 부적격 기준으로 추가한 것이다.
아울러 후보자 역량 제고를 위해 교육을 강화했다. 강화된 교육규정을 준용해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성평등 교육을 포함 총 16시간 이상의 당내 교육 이수가 필요하다. 검증 단계에서는 예비후보자 홍보 플랫폼을 운영해 당원과 국민에게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청년 정치인의 도전 기회를 보장하는 장치도 추가했다. 청년후보자가 있을 경우, 청년후보자를 포함한 경선을 원칙으로 규정한 것이다. 정치신인인 청년후보자의 경우, 공천심사 적합도조사에서 2위 후보자보다 10%p 이상 우위에 있으면 단수선정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민주당은 홈페이지에 권리당원 투표를 안내하며 이번 공천 룰에 대해 ▷후보자들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하 교육 시간을 늘리고 ▷부적격 심사 기준을 강화했으며 ▷청년과 정치신인 후보자에 대한 기회를 확대하고 ▷후보자 정보공개와 홍보를 강화해 당원들의 알권리 보장하는 등 진일보한 내용으로 마련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번 공천 룰을 두고 당내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원외 인사들과 정치 신인들 그리고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다.
이들은 우선 ‘단수 추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정안에서는 1위 후보자와 2위 후보자의 격차가 심사 총점 기준 30점 이상이거나 여론조사(공천적합도조사) 결과 20% 이상일 경우 단수 추천이 가능하도록 했다.
조직 동원력과 지역 활동을 통한 인지도가 높은 현역의원이 정치 신인과 여론조사로 맞붙을 경우 현역의원이 20% 이상 격차로 앞설 가능성이 높다.
당원이 후보자 검증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공천검증위)’가 심사를 하도록 하는데 15인으로 구성되며 이 중 절반이 외부인사여야 한다는 규정만 있다. 심사 총점이 30점 이상 차이면 단수 추천이 가능한데 특정 계파가 의도적으로 공천검증위 구성에 개입할 수 있다.
일부 당원들과 정치 신인, 원외 위원장들은 당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출마 금지’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 청년 정치인과 정치신인’ 30명은 지난달 27일 당원투표를 앞두고 국회에서 “이번 특별당규 개정안은 개혁을 요구하는 당원들과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현역의, 현역에 의한, 현역을 위한 기득권 지키기 특별당규”라며 “개혁 공천을 위한 특별당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정안을 확정짓는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3~4일 당원 투표를 실시한 뒤 곧바로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오는 8일 중앙위원회 결과와 합산해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중앙위를 통해 당원 투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둔 셈이다. 중앙위원회는 현역의원과 현역의원들의 장악력이 큰 지방의회 의원 중심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당원 투표가 실시된다는 사실 자체를 정작 당원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당내에서 당원투표 실시 전에 공식적으로 제정안을 알리는 언론 브리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당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한 재선 민주당 의원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새로운 공천 룰을 확정하는 과정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당원들에게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당 지도부에서도 공천 룰에 대한 브리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개딸들을 중심으로 당원들의 반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당원투표에서 제정안을 부결시키자는 캠페인도 시작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재명이네마을’과 ‘클리앙’ 등에선 이번 특별당규가 “‘수박(비명계를 지칭하는 은어)’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들은 게시글에서 “공천TF 구성이 ‘수박’ 위주기 때문에 이런 당규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특별당규를 압도적으로 부결시키자”고 주장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중심의 당 지도부에서도 제정안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1일 ‘재명이네마을’에 “권리당원 여러분 힘내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박 최고위원은 게시물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며 “바로 민주당의 주인인 권리당원”이라고 썼다.
댓글에서 한 당원이 ‘투표에 반대할 거지만 어차피 통과될 것 같아 무기력하다’고 쓰자, 박 최고위원은 “지금은 의원과 마찰이 있지만 결국엔 당원이 대세다. 지금의 저항과 마찰은 이겨내야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