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전세 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과제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최근 인천을 중심으로 부산 등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현재 시행 중인 전세자금대출의 보증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세자금대출이 100% 가까이 보증되는 현행 제도 때문에, 금융회사는 여신 심사 유인력이 약해지고, 임차인도 너무 손쉽게 대출을 받는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반환 못해도 패널티 없어” 지적
23일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위원이 작성한 ‘전세 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전세 제도는 임차인은 월세보다 낮은 비용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집주인은 주택 가치의 50~80%에 달하는 큰 규모의 자금(전세보증금)을 단번에 조달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전세 계약기간 동안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며 “전세 계약방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완전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먼저 전세 계약에서 거래 만기 시점의 계약 불이행에 대해 패널티를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정하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계약 2년 만기 후 임차인이 재계약을 원하지 않지만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다면 이는 ‘채무불이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세계약에서는 이 경우 집주인이 어떤 식으로 패널티를 받는지, 혹은 임차인에게 어떤 식으로 보상할지를 충분히 명시하지 않는다.
실제 지난해 '빌라왕'과 최근 인천 '건축왕' 사건은 연립·빌라, 소형 오피스텔 등에 입주한 임차인들이 집주인이 파산하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 본질이다.
아울러 임차인은 전세 거래에서 실질적으로 자금을 빌리는 집주인의 신용상태를 충분히 점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임차인이 해당 주택에 대한 담보설정 및 채권 순위를 확인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집주인의 신용상태나 연체 이력, 혹은 여타 주택 보유 여부에 따른 위험 등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약 만연…전세가 단기간에 급하락하면 상환 위험 커져
박 연구위원은 이같은 전세계약이 거시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세계약의 불완전성과 규제 적용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전세계약이 만연해왔다. 임대인은 거액의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고, 임차인은 월세보다 낮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전세가격이 단기간에 급하락하지 않고, 임대인이 전세계약 만료시 새로운 임차인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세보증금 상환 위험은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더 낮추는 안을 제시했다. 그는 “전세자금대출 보증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대출을 쉽게 만들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즉 보증이 있으므로 금융회사(공급자)는 여신심사 유인이 약해지고, 임차인(수요자)도 손쉽게 대출받게 된다. 이에 따라 전세보증금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전세수요와 전세자금대출 수요가 감소하기보다는 전세자금대출이 크게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풀이했다.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낮추면, 전세보증금 총액에 비해 대출로 조달할 수 있는 규모가 작아지며 이는 다시 100% 보증금만 있는 전세계약이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대체하는 보증부월세 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크게 할 거라는 설명이다.
다만 일각에선 보증 비율을 낮추면 자산 격차에 따라 전세집에 살 수 있는 이들이 현저히 줄어들거란 우려도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야 보증비율이 낮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당장 자산이 부족한 이들은 전세도 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