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기 유학자 양광선은 귀양살이하는 동안 천문학(점성술에 가깝다)을 익혀 청나라에서는 천문학자로 행세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이징에서 생활하며 서양의 과학문물을 소개해 동양사상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던 시기다. 일식과 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동양의 달력 체계(역법)를 대체하기 위해 황제는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서양 선교사들을 황실 천문대인 흠천감 책임자로 임명했다. 흠천감 책임자였던 탕약망(아담 샬의 한자명)이 제정한 시헌력(음력에 태양력을 더한 달력)은 조선에도 보급됐다.
하지만 유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등에 업은 양광선은 이단을 전파하고 오류투성이인 시헌력을 퍼트려 혼란을 조장한다는 명목으로 서양 선교사들을 탄핵한다. 이때 구속된 아담 샬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발병한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양광선이 흠천감의 책임자 자리를 이어 받게 된다. 양광선이 아담 샬을 탄핵하기 위해 썼던 글들을 모아 출간했던 책 제목이 ‘부득이(不得已)’다. ‘부득이’라는 말은 맹자와 장자 등 고전 문헌에 등장하는 한자어인데 순우리말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그만둘 수 없어 마지못해 등의 의미를 담는다. 양광선은 이해와 생사를 따지지 않고 그만두면 안 되는 뜻을 굳게 실행하겠다는 결의로 부득이 본인이 나서게 됐다고 ‘부득이’ 서문에 적고 있다.
양광선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양 문물에 우호적이었던 강희제가 친정을 선포하며 분위기가 반전됐기 때문이다. 황제의 지시로 동서양 달력 체계의 정밀성을 비교 검증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목숨을 건 경쟁이었기에 ‘달력 전쟁’으로 부를 만하다. 하루 길이를 측량해 서양 역법에 기반을 둔 측정이 정확한 것으로 판명되자 양광선은 파면돼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벨기에 출신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남회인은 사면복권 된 후 ‘역법부득이변’이라는 책을 써서 달력 전쟁의 대미를 장식한다. ‘부득이’ 내용 중 시헌력 비판에 대한 과학적 반론이었다.
양광선은 시헌력 체계에서 세 개의 절기가 함께 드는 달이 생기는 점(1년은 24절기로 균등하게 나뉘므로 한 달에 두 절기씩만 들어야 한다고 주장)과 춘분(올해는 3월 21일)에서 추분까지 날 수(186일)가 추분에서 춘분까지의 날 수(178일)보다 긴 점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얼핏 들으면 합리적인 주장 같지만 실제 관측 결과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지구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하기 때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지구가 태양에 가깝게 공전할 때(북반구의 겨울에 해당)는 더 빨리 움직여야만 태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케플러의 ‘행성운행 법칙’). 이 밖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지구의 세차운동을 통해 설명되는 현상들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사실 당시의 선교사들도 로마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지동설’에 근거한 이론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념 체계에 들어맞지 않더라도 정밀한 관측 결과를 수용하고 이론의 오류 가능성을 허용하면서 과학기술 전통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주장은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열린 자세로 항상 반증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제 주장에만 매몰돼 있다가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부득이 했노라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학교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났더라도 비판적으로 자기 신념 체계를 끊임없이 검증하는 과학적 사고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의 끊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응용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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