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현지시간) SVB 본사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서 예금 인출을 기다리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직장인 허모(35) 씨는 최근 예금자보호법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예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은행 계좌를 점검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소식을 접한 뒤 문득 불안감이 든 탓이다. 허씨는 “문득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고통받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났다”며 “은행이 망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돈을 맡긴 사람이 아니냐”고 말했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은행인 SVB가 파산하며, 국내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은행이 파산할 시 보유한 예금 및 대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묻는 질문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국내 금융권의 경우 SVB 사태의 영향이 제한적이고, 파산 위험성이 크지 않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교적 위험성이 큰 저축은행 등에 담긴 예금을 보장 한도 내로 분산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서울 한 시중은행의 대출 안내문 앞에서 시민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연합]

예금보호 한도 넘는 초과예금 1152조원…은행 망하면 보장 안돼

우리나라는 예금은행 파산 시 일정 부분의 예금을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예금자보호법을 운영 중이다. 이에 따라 1인당 5000만원 이하의 예금(원금+이자)에 대해 보전을 받을 수 있으며,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전 정책이 없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순초과예금(5000만원 초과 예금)은 1152조7000억원으로 2017년(724조3000억원)과 비교해 약 400조원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도 5000만원이 초과한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보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금융사가 파산할 경우 자산 정리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자산 청산 이후에 진행되는 파산 배당을 통해 5000만원 초과 예금이 일부 보전될 수 있다. 실제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로도 파산 저축은행서 보유한 부동산 등을 매각해 현금화한 후, 5000만원을 초과한 예금과 후순위채권에 대해 파산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파산 배당의 보전 시기와 규모는 불확실하다.

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에서 시민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연합]

금융당국, 美처럼 비상시 ‘예금전액보호’ 방안 검토

정부에서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금융사 구조조정 충격을 줄이기 위해 2000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전한 바 있다. 미 정부도 최근 SVB 사태에 따른 금융 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고객이 SVB에 맡긴 돈을 보장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인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예금보험공사와 함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 금융시스템 충격 시 ‘예금 전액보호’ 조치를 꺼내들 수 있도록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 점검에 나섰다. 국내에서 SVB 파산과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지만, 유사시를 대비해 제도 전반을 들여다보겠단 취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국에서 예금 전액보호 정책을 내놔, 지난 외환위기 당시 사례 등을 재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파산 위험성을 고려하거나,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한 금융사에 5000만원 이상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금융사의 건전성 현황을 파악해 자산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직 금융권에서는 SVB와 같이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은 상태”라면서도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 대응코자 하는 경우, 예금자보호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한도 내로 자산을 분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은행 망해도 대출은 몽땅 갚아야

대출의 경우 한도에 따라 보장되는 예금과 달리 상환 의무가 유지된다. 은행이 파산할 경우, 해당 은행의 대출 채권은 소멸하지 않고, 타 금융사나 정부가 인수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채권자는 바뀔 수 있지만, 채무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다만, 해당 금융사에 대출과 함께 5000만원을 초과해 보장받지 못한 예금이 있을 경우 미보전 액수만큼 대출금이 상계될 수 있다.

지난 13일 오전(현지시간) SVB 본사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서 예금 인출을 기다리고 있다.[연합]

한편 국내 금융권에서는 SVB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연쇄 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부도 국내 금융사의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상이하고, 유동성도 양호한 편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그러나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예금금리 인상으로 자금을 흡수했던 저축은행들은 현재 연체율 급증과 부동산 경기 악화 등에 따라 건전성 리스크를 겪고 있다. 특히 다수 저축은행의 자산 구조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치우쳐 있는 등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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