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40대의 A씨는 한 낮이 돼 가지만 깨어나지 못한다. 아이가 밥 달라고 조르자 그제서야 몽롱한 몸으로 부엌으로 향한다. 우선 믹스커피 3개로 잠을 깨운다. 오래 잠을 잤는데도 일어나기가 힘들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게 없다. 시장에 가 반찬 가게에서 몇 가지를 사서 밥상을 차린다. 아이는 맨날 똑같은 반찬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한때 날씬하고 활력이 넘쳤던 그는 무기력에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귀찮아”, “의욕이 없어”, “나중에 하지 뭐”….
무기력도 병일까?
심리학자 브릿 프랭크는 저서 ‘무기력의 심리학’에서 거식증, 진통제, 단 것, 사랑 중독, 자기 부정, 마약 복용, 컬트 종교까지 무절제의 끝판왕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종교 활동이 주는 엄격한 규율은 얼마간 몸에 대한 통제감을 주는 듯했지만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령 연구, 명상, 요가, 힐링, 간헐적 단식, 약물 치료 등 온갖 시도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한 상담 모임에서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상담사의 말을 듣고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 결과, “정신건강은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가장 끔찍한 심리 증상들도 실제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신체 반응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인생 궤적이 신체 반응을 이해하고 배우면서 바뀌었다고 말한다.
우선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불안감의 실체를 아는 게 중요하다. 불안감은 흔히 떨쳐 내야 할 문제, 적으로 인식하지만 저자는 신체의 ‘지시등’이라고 말한다. 자동차의 엔진 경고등과 같다.불안감이 무기력의 원인,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가리키는 징후라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려 단 음식을 먹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완벽해 보이는 게시물을 본다든지 술을 마시고 인간관계에 매달린다면 내면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게 먼저다.
TV만 보거나 할 일을 미루는 행동은 뇌의 생존 모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뇌의 선택이다. 무기력 상태로 있으면 변화 과정을 동반한 불편을 막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게 고통스런 감정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또한 일을 미룸으로써 실패와 거절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런 배후를 이해하면 내 행동과 나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나는 왜 이 모양이야”라고 비난하는 대신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겐 여러 개의 가면, 부분, 그림자들이 있다. 따라서 할 일을 미루는 행위는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내면의 일부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안의 어떤 부분들이 고통, 두려움, 슬픔을 느낄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그 부분의 느낌이 의미하는 바에 귀 기울이면 나에 대한 통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무기력에 빠지는 진짜 이유는 무기력이 우리를 돕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여기는 부분들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체스판을 비유로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우선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는 전체를 조망하기 힘들지만 문제가 되는 것들을 나열해서 판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가령 사회생활, 커리어, 가족, 돈, 창의성, 자녀교육, 취미, 건강 등 관심 사항들을 죽 적는다.
그런 뒤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위축되고 여건이 충분치 않을 때 상황을 압박하는 일은 도움이 안된다. 대신 쉽게 움직이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먼저 하는 것이다. 쉬운 움직임을 통해 탄력을 받으면 더 어려운 영역에 대처가 가능하다
적어 놓은 판을 보고 어떤 부분에 답이 없다고 느끼는지 확인한 뒤, 간단한 선택사항을 적으면 행동으로 옮기기 쉽다. 가령 경제적인 부분이 문제라고 여긴다면 1. 기일이 지난 청구서를 전부 리스트로 만들고 2, 그와 관련, 고객 상담 전화번호를 적은 뒤 3.전화해 지불 계획을 세우라는 식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작은 걸음이라도 한 걸음 내딛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일단 움직이면 계속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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