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간밤 뉴욕증시는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치를 웃돌았음에도 혼조세로 마무리됐다. 시장 입장에서 CPI 결과를 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통화정책과 관련한 긍정적·부정적 요인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달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까지 특별한 이벤트가 부재한 상황이라 당분간 지지부진한 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증시도 반년 이상 심리적 저항선으로 버티고 있는 2500선(코스피 기준) 돌파가 단기 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노동부는 14일(현지시간) 1월 CPI가 전년 동월보다 6.4% 올랐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10월 이후 15개월 만의 최소폭 상승이자 7개월 연속 오름폭이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작년 12월(6.5%)보다 0.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쳐 물가 둔화 속도는 느려지는 모습이었으며, 시장 전문가 예상치(6.2%)도 웃돌았다. 그럼에도 비교적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 가격이 영향을 크게 미쳤다는 점과 서비스 가격 중 주거비가 조만간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우려를 완화시켰다.
주식시장은 CPI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채권시장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며 단기물을 중심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6개월물 미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중 5%를 웃돌면서 2007년 7월 이후 최대치를 찍기도 했다. 미국 주식중개사 LPL 파이낸셜의 제프리 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으나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며 “연준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빠르게 식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 위원들의 발언도 나왔다. 존 윌리암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 물가 목표치 달성을 위해 우리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고,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도 “인플레이션이 정상화하고 있으나 느리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번 CPI에도 제레미 시걸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연준이 연말께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 1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세 둔화)’ 발언에 환호했던 주식시장은 이후 발표된 1월 고용지표와 연준 의원들의 매파적(긴축선호) 발언으로 ‘스텝’이 꼬이면서 뚜렷한 방향성 없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CPI가 시장 흐름에 ‘가르마’를 타 주길 바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CPI 결과가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나오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분석까지 나온 상태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15일 “상품 물가의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고 미국 경제도 위축 국면에 위치해 있어 수요가 점진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며 “하지만 주거비와 서비스물가의 둔화 속도를 감안할 떄 물가 하락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에너지 수급도 타이트해지고 있어 주기적으로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연구원은 “결국 연준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한두 차례의 금리 인상과 고금리 유지 스탠스를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상품물가 둔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기는 어렵고, 서비스물가 둔화도 생각보다 더딜 수 있다”며 “올해 물가의 방향성은 명확하지만 둔화 폭은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어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고점을 통과했다는 점에는 안도하겠으나 지금의 디스인플레이션이 경기 확장을 지속시킨다는 점에서는 계산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며 “침체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은 목표에 부합하지만, 반대로 제약적인 통화정책을 상당기간 이어가야 하며 이를 시장과 소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