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예비안전진단 통과 후 정밀안전진단 본격 추진
1988년 준공 대단지…전용 79~165㎡ 중대형 평형
용적률 221%·장기간 거주 고령층 많은 점은 걸림돌
규제 완화에 재건축 초기단계 추진 움직임 줄 이을 듯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에 노후단지들의 재건축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노른자 땅에 위치한 매머드급 대단지가 예비안전진단 통과 약 8개월 만에 정밀안전진단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 주목된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삼풍아파트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정밀안전진단 예치금 모금을 시작했다. 준비위는 오는 5월까지 모금하고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해 10월 말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말 출범한 준비위는 소유주 안전진단 동의서 접수 등을 거쳐 구청에 예비안전진단(현지 조사)을 신청, 지난해 5월 통과 통보를 받았다. 이후 즉시 정밀안전진단을 나서지는 않았고, 정부의 규제 완화 등을 예상해 미뤄왔다.
지난 1988년 지어진 삼풍아파트는 서울중앙지법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전용 면적 79~165㎡의 중대형 평형으로 최고 15층, 24개동 2390가구의 대단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소유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하철 2·3호선 교대역과도 가깝고, 단지 내 유치원뿐 아니라 원명초가 있는 ‘초품아’ 단지다. 입주 당시에는 국내 최고급 아파트였지만, 현재는 최고급 주상복합, 재건축을 마친 고급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주변 단지에 비해 시세는 저렴하다.
이런 가운데 새해 들어 재건축 안전진단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정부는 지난 5일부터 안전진단 평가 항목인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과 ‘조건부 재건축’ 판정 대상을 축소해 재건축 추진을 쉽게 했다. 서울 시내 대부분 아파트지구가 용도, 높이 등 규제 완화를 위해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점도 재건축을 수월하게 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초구에서는 삼풍아파트 등 단지가 포함된다. 옛 아파트지구와 달리 지구단위계획 구역은 현행 도시관리체계와 내용·형식이 같아 정비계획안 수립이 쉽다. 이에 준비위는 정밀안전진단을 본격 추진하며 재시동을 건 상황이다.
다만 향후 절차에서 주민 동의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삼풍아파트는 전체 2390가구 중 약 56%인 1340가구가 전용 130㎡(45평)~165㎡(58평)의 대형 평형이다. 투자 수요보다는 대형 면적에 장기간 거주한 고령층이 많아, 이주에 대한 부담 등으로 재건축에 미온적일 수 있다. 단지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워낙 큰 평수가 많고, 입주 때부터 30년 이상 살고 있는 고연령 입주자들이 많다"며 “(재건축 각 절차에서) 단지 내 동의율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재건축 사업성을 가르는 용적률도 221%로 다소 높아, 민간 주도만으로는 사업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용적률이 200%를 넘는데 민간의 힘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높은 비용 등에 부딪힌다”며 “공공이 관여하는 신속통합기획 혹은 향후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규제 완화 기조에 재건축 첫발을 떼거나 속도를 내는 단지가 줄 이을 전망이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의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전날 송파구청으로부터 ‘재건축 확정’ 통보 공문을 받았다.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공원한신아파트의 재건축추진위원회도 최근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다만 남은 규제, 비용 불확실성에 초기 절차만 제한적으로 활발할 것이라는 시각도 상당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사업 규제를 대폭 완화했더라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이 있어 사업이 쉽지는 않다”며 “규제 완화에 따른 사업 추진 절차는 이전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상단이 불확실해 사업비 계산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삽 뜰 단지는 많지 않지만, 이전 절차는 미리 속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