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효력·내용 관련 분쟁 잦아…유언대용신탁으로 해결 가능
신탁 시 재산 독립성 인정…위탁자 경제력 악화에도 금전·부동산 등 안전
2022년 11월 신탁 시장 1255조원…5년간 41.6% ↑
정부, 작년 10월 ‘신탁업 혁신방안’ 발표…“활성화 돕겠다”
가업승계신탁, 中企 안정적 경영권 확보 도구로 유용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 중소기업 창업자 A 씨는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그는 아들에게 회사를 완전히 물려주고 싶지만, 적잖이 회사 경영에 관여했던 딸이 이를 수용할지 걱정 중이다. 딸이 유류분 분쟁을 일으킬 경우 법정상속분의 반인 25%에 해당하는 지분을 딸이 가질 수 있고, 경영권을 둘러싼 자녀들의 눈꼴사나운 싸움 탓에 평생 일궈온 회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에 한 금융투자회사 관계자가 내놓은 솔루션은 ‘가업승계신탁’이다. A 씨가 보유한 회사 지분 100%에 대해 신탁회사와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후수익자를 아들 75%·딸 25%로 지정하되, 신탁회사를 통해 회사 주식 100%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토록 할 경우 유류분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순양가(家)와 같은 재벌까진 아니라도, 각자 산업 분야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들 역시 가업 승계 과정에서 자녀 간 분쟁으로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 차질로 인한 금전적 피해는 물론, 법정에 오가며 발생하는 이미지 타격 역시 회사의 뿌리를 한순간에 흔드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사전에 해결하기 위한 좋은 솔루션이 바로 신탁이다.
유류대용신탁, 효력·내용 둘러싼 분쟁 잦은 유언 단점 완벽 보완
상속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인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자신이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부터 신탁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을 말한다. 위탁자는 생전에 신탁한 금전·부동산을 운용해 이익을 얻고, 사후에는 상속인에게 법정상속 비율이 아닌 자신이 정한 비율로 분배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들을 해소해 줄 수 있다. 우선 전문가가 참여해 계약이 체결되는 만큼 공증 절차와 방식이 까다로운 탓에 효력·내용·형식에 대한 다툼이 잦은 유언에 비해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에 신탁 재산의 독립성이 인정되는 만큼, 신탁 계약 후 위탁자의 경제력이 급격히 나빠지더라도 유언의 목적물인 금전·부동산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가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B(86·여) 씨는 하루하루 몸이 힘들어지는 자신을 돌아보며 최근 재산 정리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A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지난 30여년간 함께 살며 자신을 돌봐 온 딸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재산을 주고, 10여년 넘게 연락조차 하지 않는 첫째 아들에겐 최소한의 재산만 주고 싶다는 것이다. 유언을 하더라도 소송이 벌어지면 법적 비율에 따라 재산이 분할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던 B 씨는 비슷한 고민을 했던 친구에게 ‘유언대용신탁’을 추천받았다. 현시점에서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에 따른 분쟁을 방어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란 말에 B 씨는 다음 주 중 금융기관에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최근 들어 고객들이 유언대용신탁을 찾는 이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자녀 간 상속 분쟁 방지 목적 이외에도 자녀의 상속재산 탕진을 우려하는 고객은 물론, 이혼한 배우자가 자신이 자녀에게 상속한 재산을 친권을 통해 전횡하는 것을 막고자 유언대용신탁을 찾는 경우도 많다.
오영표 신영증권 패밀리헤리티지본부장은 “고령 자산가의 돈을 약탈하는 요양보호사의 행태 역시 신탁 설정을 통해 막을 수 있다”며 “신탁 설정 시 재산 소유권이 신탁회사로 변경되는 만큼, 고령자 본인의 의사 확인 없이 재산이 처분될 위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예시를 들었다.
가업승계신탁, 中企 안정적 경영권 확보 도구로 유용
금융당국 역시 고령화에 따른 효율적인 재산 관리 도구로 신탁의 효용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오 본부장은 “정부가 지난해 10월 ‘신탁업 혁신방안’을 내놓은 것이 이런 맥락”이라며 “금융당국이 활성화를 돕겠다고 언급한 ▷후견신탁 ▷장애인신탁 ▷가업승계신탁은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활성화가 필요한 신탁 유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업승계신탁’은 후계 구도로 넘어가고 있는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한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평가다.
다만, 가업승계신탁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가업승계지원 세제가 가업승계신탁을 설정했을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지가 불명확하다는 문제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가업승계 지원을 위한 세법 개정안이 시행됨으로써 중소기업 오너 경영인들의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 경영인이 생전에 낮은 세율로 지분을 승계토록 하는 증여세 과세특례의 적용 대상과 공제 액수·한도가 확대됐고, 가업상속공제 역시 증여세 과세특례와 동일하게 적용 대상이 확대됨과 동시에 공제한도도 가업 영위 기간별로 각각 100억원씩 커졌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가업승계신탁과 가업승계세제 등 복잡한 제도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관련 컨설팅을 주력으로 하는 신탁회사와 미리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여유 있게 준비할 시간과 최적의 답을 제공할 전문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신탁 시장 규모, 5년간 41.6% 확대
초고령화 시대를 미리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신탁 시장의 규모도 매년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금융업권의 연간 신탁 시장 규모는 약 1255조원에 이른다. 5년 전인 2018년(약 886조원)과 비교하면 41.6%나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업권별 신탁시장 점유율은 은행이 42.5%로 절반에 가깝고, 부동산신탁사가 29.3%, 증권사가 26.6%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권에선 2010년 4월 금융권 최초 유언대용신탁인 ‘하나 리빙 트러스트’를 출시한 하나은행이 선두 주자이며, 증권업계에선 ‘패밀리헤리티지서비스’란 이름의 신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신영증권이 사업에 적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