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가족·친구와 집 이야기 눈치보이네
입주 물량 폭탄에 전국 최악 '미분양 무덤'
미분양 아파트 과장광고에 난동 사건까지
조정지역 해제 등 특단 조치도 미풍 그쳐
이 와중에 올해 공급물량도 1만가구 넘어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 서울에서 자취하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설 연휴 고향 대구에 내려가면 부동산 관련 이야기에는 입을 꾹 다물 작정이다. 대구에 사는 누나 가족이 조카 교육을 위해 시내 학군지로 갈아타려 했지만, 좀처럼 집이 안 팔려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다. 고향을 덮친 '미분양 쓰나미'에 매형이 몇 년 전 '불장'에 샀다는 준신축 아파트값이 주춤하자, A씨도 괜히 누나 눈치를 보고 있다. 대구 토박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자칫 분위기를 헤칠라 집 얘기만큼은 피하려 한다.
전국 미분양 물량 1위 대구에서는 결혼 잔소리만큼이나 '집 얘기'가 명절 밥상의 금기어가 됐다. 대구 부동산 경기가 살인적인 입주 물량 공세에 얼어붙은 탓이다.
대구 부동산 시장은 지난 정부 초반 부동산 규제에 매물이 줄며 매도자 우위 양상을 보였다. 주택 호황기인 2020년 말에는 달성군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까지 지정됐다. 그리고 이듬해 초까지만 해도 대구 아파트 분양권 당첨은 '로또'였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금리가 오르자 상황이 급변했다.
주택 거래량은 급감하는데 공급이 넘쳐나며 전국 최악의 '미분양 무덤'이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5만8270가구다. 이 중 대구 미분양 주택이 전체의 20% 수준인 1만1700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2011년(8672가구) 이후 10여년 만에 최다였으며, 서울(865가구)과 비교하면 13배 수준이다.
흉흉한 시장 분위기 속 미분양 아파트 수분양자의 '난동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자이에스앤스디가 대구 수성구에 분양한 '만촌자이르네'의 한 계약자는 모델하우스를 찾아 분양률 등 과장 광고를 이유로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다 거절당하자 의자를 집어던져 아파트 모형을 부쉈다. 이와 관련 대구 지역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기물 파손은 당연히 잘못이지만, '계약률 뻥튀기'와 고분양가에 격분한 심정은 짐작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급기야 건설사가 미분양만은 막으려 계약 해지 위약금을 받지 않겠다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롯데건설은 대구 달서구에서 분양한 '달서 롯데캐슬 센트럴스카이' 단지에 대구시 최초로 계약금 안심보장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대구에서 계약금을 전액 보장하는 이런 제도가 시행된 것은 처음이었다.
미분양 늪 속 가격 거품도 빠르게 꺼졌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아파트값은 평균 7.15% 내렸다. 최고가에서 반토막 난 매매 거래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달 16일 지역 대표 학세권인 수성구 범어동에서는 '브라운스톤범어' 전용 84.85㎡가 5억4500만원(17층)에 팔렸다. 이는 재작년 8월 기록한 최고가 10억6000만원(27층)보다 무려 5억1500만원 떨어진 가격이다.
이런 가운데 규제 완화 약발도 영 신통치 않은 분위기다. 지난해 대구 전역의 조정대상지역 해제는 공급 과잉과 고금리 부담 속에서 미풍에 그쳤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특단의 조치'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도 미분양 적체 상황에서는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웃돈을 얹어가며 분양권을 전매할 이유가 없어서다. 2022년 대구 지역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0.5대 1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공급 예정 물량도 상당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달 13일 기준 올해 지방 일반 공급 예정 물량은 1년 전보다 약 38% 줄어든 8만4775가구인 반면, 대구의 공급 예정 물량은 1만616가구로 지난해보다 12.5% 감소에 그쳤다. 앞서 대구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 2019년 7483가구에서 2020년 1만3660가구, 2021년 1만6904가구로 늘었는데, 올해도 지난 2년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