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의견수렴·내년 초 입법 초안 공개 예정
IRA와 유사한 방향 될 것…역내 생산 강화
“자유무역 원칙 지켜야·보호무역주의 우려”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유럽연합(EU)이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 추진을 본격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비상에 걸렸다. 두 법안은 희토류와 리튬 등 주요 금속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역내에서 생산된 자재를 사용한 제품에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국내 업계는 “자유무역에 위반되는 차별적인 법안”이라며 조건 완화, 시행 연기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지난해 9월 연례 정책연설에서 주요 원자재에 대한 역외 의존도 축소 및 역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CRMA 입법을 예고한 데 이어, 최근 구체적인 법안 마련을 위해 관련 업계 및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했다.
EU는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입법 영향 평가를 거쳐 내년 1분기 내 원자재법 초안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진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사실상 북미산 전기차 등에 혜택을 집중한 미국의 IRA와 유사한 방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CRMA는 전략 원자재를 식별하는 기준을 정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와 목표에 대한 규정을 담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기존에 EU가 관리하던 핵심 원자재(CRM) 목록과 산업별로 대외 의존도가 높거나 공급망 위기에 노출된 물질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EU는 역내 핵심 원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2008년 원자재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이후 2011년부터 3년마다 역내 경제적 중요도와 공급 위기를 기준으로 핵심 원자재를 재지정하고 있다. 현재 핵심 원자재는 2020년 지정된 30개 물질이다. 이들 중 마그네슘과 희토류를 포함한 19개 물질 주요 수입국이 바로 중국이다.
또 CRMA는 역내 주요 원자재의 공급망 구축을 위해 공급망 분야별로(채굴·정제·가공·재활용 등) 전략적 프로젝트를 식별하고, 자금 조달 확대 및 허가 절차 간소화를 통해 생산 역량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수소,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완성차, 배터리 업체다. CRM 목록에 포함된 리튬, 코발트, 흑연 등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에서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앞서 발효된 미국 IRA의 경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에 사용된 핵심광물과 주요 부품 역시 일정 비율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 체결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 같은 규정이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내년 국산차의 미국 수출량이 올해보다 4.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국내 업계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유럽한국기업연합회(KBA유럽)와 연합회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최근 공동명의로 EU 집행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CRMA는 EU의 근본 무역 규칙인 자유무역 원칙을 지원해야 한다”며 “자국 기업에만 유리한 법·규제를 도입하는 일부 국가에 의해 보호무역주의 추세가 촉발된다면 이는 우려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역시 미 재무부에 IRA에 관련 의견을 제출했다. KAMA는 의견서에서 “한미 FTA의 내국인 대우 원칙상 한국산은 미국산과 동등대우를 받아야 하는 점, 한국 정부는 국산차뿐만 아니라 미국산 수입 전기차에도 보조금을 동등하게 지급중인 점, 한국 자동차업체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로 미국의 경제와 고용에 기여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한국산 전기차도 미국산과 동등하게 세제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