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현지 취재를 간 적 있다. 리히터 규모 9.0, 무엇보다 대규모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재해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기억이 남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건 당시 느낀 일본인들의 침착함이었다. 편의점과 마트엔 당연히 생필품이 부족했다. 물류망이 전면 중단된 결과다. 그러면서도 ‘사재기’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출퇴근길 직장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마스크 자체가 귀한 풍경일 때다. 시민들에게 방사능 유출이 우려되느냐고 물었다. 손사래를 저으며 “봄철 꽃가루 때문”이라고 웃기까지 했다.

여진은 한동안 지속됐다. 호텔 숙소가 돌연 흔들렸다. 기사를 작성 중이던 노트북만 들고 호텔 로비로 뛰쳐나갔다. 놀란 건 우리 취재진뿐이었다. 머쓱하며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혼란스러웠다.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불안감이거늘, 정작 그들의 일상은 어제와 다름없었다. 궁금했다. 이 평범한 일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당시 한 시민의 답이 인상 깊었다. “일본 사람들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천재지변을 수없이 겪었던 일본사를 살펴보라고 했다. 인간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현실에 충실하려는 게 일본인의 특성이라고 했다. 좋게 표현하면 침착함이고, 달리 표현하면 자포자기, 혹은 불감증이다.

어떤 식의 표현이든 배경은 서글프다. 당사자보다 관찰자가 더 공포스러운 심리. 정작 당사자들은 이미 익숙하고 무뎌진 공포였다.

일본만의 일일까. 서글픈 불감증은 한국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 살기 안전하느냐”는 질문은 외국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궁금증이다. 정작 우리만 질문 자체가 이상할 따름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고 방사포가 오가니, 아마도 수많은 관찰자 눈엔 전쟁 직전의 공포심이 느껴질 테다. 우리 일상은 어제와 다름없다. 좋게 말하면 침착함이고 달리 표현하면 포기, 불감증이다.

또 하나, 이번엔 전 세계에 걸쳐 불감증의 영역으로 가는 사안이 있다. 우선 사례를 나열해보자. 지난 24일 17년 만에 겨울이 아닌 10월에 대설특보가 발효됐다. 지난 8월 제주도는 낮 기온이 37.5도까지 상승, 지역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9월 중순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5도 높은 23.2도를 기록해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9월을 기록했다. 중국은 최근 사상 최초로 한파주의보와 폭염경보를 동시에 발령했다. 산업화 이전엔 수백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던 기록적인 가뭄이 이젠 20년에 한 번꼴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들에 별다른 감정이 동하지 않는다면, 이젠 기후위기도 불감증의 영역으로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심리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침착함이겠다. 지진에도 방사포에도 폭염에도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평정심. 달리 보면 ‘포기’다. 눈을 감고 암울할 미래와 불안감을 애써 잊으려는 포기. 불감증은 침착함과 포기,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기후위기는 분명 현존하는 공포다. 이마저 익숙하다면, 우린 침착한 걸까, 포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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