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과 루시 사이 암흑시대 풀 열쇠

나무타기, 직립보행 둘 다 가능힌 골반

강인한 엄지근육, 유연한 척추 등 특징

인류는 “현생 침팬지와 조상 달라” 주장

학계는 부정적…직립보행 여전히 숙제로

[북적book적]고인류 '아르디', 진화 계보 다시 쓰다
“아르디는 인류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불편한 여성이었다. 아르디의 골격은 어떻게 우리가 인간이 됐는지, 어떻게 우리 조상이 다른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는지,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으며 재주 많은 손을 갖게 됐는지(…)인류의 주요한 믿음을 위협했다.”(‘화석맨’에서)

1994년, 팀 화이트가 이끄는 화석 발굴팀이 에티오피아 아파르 지역에서 일련의 인류 화석을 발견했다. 인근 암석으로 방사선 연대 측정을 한 결과, 이 뼈 화석은 440만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일명 ‘아르디’다.

이는 ‘최초의 인류 조상’으로 유명한 320만년 전 ‘루시’보다 100만 년 이상 오래된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후 15년 동안 극비리에 이 화석을 연구, 인류진화사와 관련된 지난 연구 성과를 뒤집는 획기적인 발견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인류는 현생 침팬지의 조상의 후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학저널리스트 커밋 패티슨은 2012년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인 팀 화이트를 만난 뒤 진화에 관한 앞선 이론들과 충돌하는 ‘아르디’라는 미해결 사건에 빠졌다.

[북적book적]고인류 '아르디', 진화 계보 다시 쓰다

‘화석맨’(김영사)은 패티슨이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현장 탐사에 동행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자료와 수백 편의 논문을 탐독, 루시부터 아르디 발굴까지 인류의 뿌리찾기 전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학계는 320만년 전 루시가 인류 가계도에 속한 모든 종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선포했지만 루시 이전, 어떤 존재가 있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였다. 즉 인류가 침팬지 및 고릴라와 약 500만~600만 년 전에 공통 조상을 가졌다는 분자생물학의 연구로 볼 때, 암흑시대로 불리는 약 400만 년 전의 화석이 없었다. 화이트는 그 틈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에티오피아 아파르 저지대에서 발견한 루시는 당시 고고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직립보행에 대한 오랜 믿음은 직립보행과 두뇌 팽창이 동시에 일어났으며, 직립보행을 통해 손이 자유로워지며 도구가 탄생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루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두뇌가 침팬지 크기로 도구도 만들 수 없었던 종이 두 다리로 걷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화이트의 아파르 저지대 탐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즉 루시와 아파렌시스로 제기된 인류는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는지, 아프리카 유인원으로부터 어떻게 분기했는지를 보여줄 미싱 링크를 찾는 일이었다. 아르디는 의문을 풀어줄 열쇠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아르디의 키는 약 1.2미터, 뇌 크기는 300세제곱센티미터로 자몽만 하다. 손목은 침팬지와 다르게 유연했고 손을 쥐는 동작에 유리했고 엄지 근육도 강인했다. 송곳니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것보다 작고 다이아몬드 형태였다. 발가락은 침팬지처럼 마주 볼 수 있었고, 아치가 없는 편평한 발이었지만 발 측면에는 땅을 미는 이족보행에 적합한 관절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르디의 골반은 나무 타기와 이족보행 양쪽의 해부학적 특성을 조합해 갖고 있었으며, 척추는 현생 유인원의 경직되고 뻣뻣한 척주와 달리 유연했다.

아르디가 보여준 것은 초기 인류 조상이 놀라울 정도로 현생 침팬지와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류의 유연한 허리가 짧고 뻣뻣한 유인원의 허리에서 진화했을 거란 기존의 믿음과 전혀 다른 얘기였다.

기대를 모았던 2009년 화이트의 발표는 그러나 환영받지 못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 직립보행과 나무 타기 특성을 모두 갖춘, 분명 인류의 조상으로 추정되지만 현생 유인원과는 다른 고인류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모든 사람들의 주파수 대역폭을 넘어가버렸”다.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려운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학계는 현생 유인원이 평행진화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또한 직립보행의 이유로 일부일처제를 제시한 러브조이의 설명은 더욱 반발을 샀다.

이는 화이트팀의 밀실 연구에 대한 불만으로 번져 정보 접근성에 대한 불만과 폐쇄적인 연구, 화이트의 성격과 소통 문제로 공격이 이어졌다. 화이트는 직접 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입을 닫고 만다. 그렇게 아르디는 무시됐다.

아르디 문제는 학계에 여러 교훈을 남기게 된다.

시대가 요구하는 기대치에 맞춰 왜곡하지 않으면서 설명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고, “인간은 자고로 순수한 설명 그 이상, 의미와 감정적인 만족감을 주는 결론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책은 학자들의 ‘보물’을 찾으려는 열정과 장애, 역사 및 시대적 배경, 수많은 연구자들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현장, 속도감과 친절한 설명까지 훌륭한 다큐멘터리처럼 읽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화석맨/커밋 패티슨 지음, 윤신영 옮김/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