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정착식민지 만들기 ‘식민주의 전쟁’
시온주의, 열강 업고 ‘유대국 만들기’ 기획
밸푸어선언~가자지구 공격 조목조목 밝혀
동예루살렘 수도로 국가 수립 제안도
열강 침탈·분단…한국 근대사와 닮은꼴
지난 5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무력충돌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인근의 정착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추방한 게 원인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유혈 충돌이 이어져온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분쟁은 최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라졌다. 강대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에서 벗어나 ‘두 국가 해법’이 부상, 변화가 감지된다. 국제사회가 ‘피해자 팔레스타인’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인 중동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기원과 성격을 ‘정착민 식민주의’로 규정한다. 영국과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낸 뒤 정착민으로 밀고 들어와 땅을 차지하고 전 지역을 유대국가로 만들어나가는 기획이라는 것이다.
‘같은 땅에 대해 각자 권리가 있는 두 민족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 아니라 유럽 백인의 정착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식민주의가 전쟁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다만 팔레스타인의 경우엔 식민 본국인 영국이 아닌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정착민으로 들어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할리디는 최근 펴낸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열린책들)에서 분쟁의 100년 역사에서 여섯 가지 사건, 즉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오늘날 가자지구 공격까지 결정적 전환점에 초점을 맞춰 그 땅의 주인들이 어떻게 외부인에 의해 ‘정치적·민족적 살해’를 당하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조목조목 밝혀나간다.
1917년 밸푸어 선언은 100년 전쟁의 신호탄이자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사건의 시작이다.
영국은 1917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본거지를 수립하는 것을 찬성”한다는 일명 밸푸어선언을 발표한다.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이 선언은 94퍼센트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아랍인들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6퍼센트의 유대인에게만 민족적· 정치적 권리를 부여한 대 팔레스타인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밸푸어 선언을 뒤늦게 알음알음 듣게 된다. 검열과 뉴스 금지, 봉쇄 등으로 정보가 막혀 있었던 까닭이다.
이어 1922년 새롭게 구성된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반포, 영국의 통치를 공식화하면서 밸푸어 약속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 위임통치령에는 오직 유대인만이 팔레스타인과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서술돼 있다. 오스만, 맘루크, 십자군, 아바스, 비잔티움, 그리고 이전의 마을과 성, 성지, 사원과 기념물 등 2000년에 걸쳐 축조된, 한 민족의 땅에 대한 역사를 고스란히 지워버린 것이다.
또한 위임통치령은 시온주의 운동에 특권과 편의를 제공하고, 유대인기구에 준정부 지위를 부여했다. 이민 유입 장려와 시민권 획득을 쉽게하는 국적법도 마련됐다. 유대인 이민자들은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던 반면, 영국이 통치권을 차지할 때 해외에 나가있던 팔레스타인 토박이 아랍인들은 국적을 얻지 못했다.
위임통치를 계기로 유대인 이민은 빠르게 늘어난다. 1926년엔 18%로 세 배가 증가하고, 나치 박해를 피해 1935년 한 해 에만 6만 명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게 된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1937년 팔레스타인 무장반란에 대한 영국의 무자비한 진압, 팔레스타인 내부분열 등을 거치며 약화된다. 1948년이 되면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 필요한 인구학적 임계점에 달하고 군 병력도 마련되면서 시온주의가 완성된다. 1949년에는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된 지역에 사는 아랍 주민의 80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쫒겨나고 토지와 재산을 잃었으며 72만 명이 난민 신세가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하느님이 주신 땅’, ‘이산과 핍박당하는 민족’이라는 시온주의 서사에 주목하는데, 이것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그동안 국제사회의 눈을 가려왔음을 지적한다. 그 뒤엔 원주민의 역사를 야만적· 후진적이며, 황량한 땅을 "꽃피는 정원"으로 만들었다는 식의 식민주의의 익숙한 이야기, 허위와 편견, 오류, 왜곡이 자리하고 있다.
1969년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고,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경멸적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왔다.
저자는 이제 100년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며, 평화적 공존의 방향을 모색한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뺏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국외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고국 귀환,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 두 민족 국가 창설 등도 가능하지만 이 또한 이스라엘의 반대가 예상된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각성도 촉구한다. 여전히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음을 세계 여론과 이스라엘 여론에 호소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을 주문한다.
강력한 서사와 이미지가 국제사회의 동조를 얻어내는데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울림이 있다.
팔레스타인에 수백년 뿌리내려온 명문가문 출신인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60년대 중반 서울에서 3년간 고등학교를 다닌 인연을 소개했다. 아버지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 총무로 일을 했기 때문으로, 당시 한국전쟁과 한국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털어놨다.
“21세기에 태어난 손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며, “아이들은 이 100년 전쟁의 끝을 보게 되리라.”는 그의 헌사는 열강의 침탈과 식민주의, 분단으로 이어진 한국 근대사와 겹쳐지며 공감을 불러온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라시드 하릴디 지음, 유강은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