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런던 킹스칼리지가 2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사대상 28개국 중 한국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건전한 갈등을 넘어 싸우기 위해 싸우는 고도 갈등 상황을 우리는 매일 목도한다.

저널리스트인 아만다 리플리가 ‘극한 갈등’(세종서적)에서 주목하는 점도 이런 고도 갈등이다. 고도 갈등이란 선과 악, ‘우리’와 ‘그들’의 양자구도를 형성, 끊임없는 반목으로 치닫게 된 갈등을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현실이든 가상이든 상대방과의 모든 관계가 대결의 양상을 띤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양측 모두 자신이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다고 믿는다.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굴욕을 느끼면 크게 문제 삼는다.

고도 갈등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가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미라클마일 지구에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죽음의 함정’, 라 브레아 타르 웅덩이가 있다.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무려 300만 개가 넘는 동물 뼈를 발견했다. 완벽하게 보존된 매머드부터 4000개 이상의 다이어올프 뼈까지 강력한 포식자들의 뼈가 산을 이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만 년 전 고대 들소 한 마리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발굽이 타르 흙덩어리에 걸려 옴짝 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들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이어올프 떼들이 달려온다. 이들은 들소에 달려들어 포식하지만 이내 같은 신세가 된다. 그렇게 다이어울프의 비통한 울음소리를 듣고 더 많은 동물들이 몰려오고 포식과 함께 죽는다. 썩은 사체는 또 다른 짐승을 불러들인다. 이런 식으로 재앙을 맞이한 사체 수가 기하학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갈등은 점점 고조돼 특정 지점을 지나면 라 브레아 타르 웅덩이와 똑같이 작용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수렁에 빠져들면서도 자신의 삶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무리짓기와 범주화가 인간의 본성에 속하기 때문에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책에는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온 다양한 갈등 생존자들의 얘기가 실려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시절, 부부간 갈등 중재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고도 갈등 중재자로 활약하는 게리 프리드먼, 갱단 두목으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격한 분노에 휘말려온 커티스는 시카고 폭력예방프로그램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 운동가인 마크 라이너스는 극단적인 유전자변형식물 반대론자였고 대기업과 과학자들과 항상 싸우며 사람들 간 혐오와 갈등을 부추겨왔지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고도갈등 탈출법은 우선 선과 악이라는 양자구도에 빠지지 않고 대안을 찾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말 적극 경청, 역할 바꾸기, 언더스토리 파악, 자아에 대한 집착 내려놓기, 평온한 시간 확보와 갈등 환경에서 벗어나기 등이다.

책은 가족 내 다툼 같은 개인적 갈등부터 빈부격차, 노사문제, 젠더갈등 등 사회적 갈등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갈등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극한 갈등/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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