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대장암 수술 후 10년만에 담도암 4기 발병

64세 주정자 씨, 수술+항암치료 후 완치 ‘기적’

[김태열의 생생건강S펜] 위·대장·담도암, 3번의 암 모두 이기고 완치 판정
주정자(가운데) 씨의 담도암 치료를 담당한 가천대길병원 심선진(왼쪽) 교수와 김두진 교수.

[헤럴드경제=김태열 건강의학 선임기자] 위암·대장암·담도암 등 한 번도 겪기 힘든 암을 세 차례나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치료해 모두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의 사연이 화제다. 특히 환자는 치료가 어려운 담도암 말기 진단 후 5년 만에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에 가까운 성과는 면역항암제 등 적극적인 치료와 ‘의료진-환자-가족’이 한마음으로 치료에 매진한 결과다.

사연의 주인공은 인천에 거주하는 주정자(64) 씨로, 그는 2007년 대장암과 위암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건강검진을 위해 대장내시경을 받았는데 1기 대장암(우측 상행결정암)이 발견됐고, 치료를 위해 입원해 정밀 검사를 받던 중 조기 위암도 발견됐다. 다행히 모두 조기에 발견했지만 위와 대장 일부의 절제가 불가피했다. 주씨는 가천대길병원에서 우측 대장절제술과 위부분절제술을 받았다. 주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암이 두 개나 발견되니 실감이 나지 않았고, 둘 다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수술 후 10년이 지난 2017년 6월 주씨는 피로, 팔·복부 통증 등 몸에 이상을 느꼈다. 집 근처 내과에서 소화제를 처방받아 먹다가 계속되는 팔과 어깨통증으로 인근 정형외과를 찾았다. 주씨는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보시라’고 해서 농담처럼 ‘또 암이라도 있나요?’ 하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며 “10년 전과 달리 무섭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주저앉아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가천대길병원 외과를 방문해 정밀 검진 결과, 주씨는 간내 담도암 4기로 진단됐다. 우측 간 13㎝ 크기의 커다란 암덩어리와 간내 다발성 전이 소견, 종격동(양측 폐 사이), 복부, 림프절 등 광범위한 전이도 확인됐다.

간내 담도암은 간 안에서 담즙이 운반되는 통로인 담도에 생긴 암이다. 간내 담도암을 포함한 담도암은 국내 암 발생 순위 9위지만 사망률은 6위로,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 시 근치적 수술이 가능한 환자비율도 30% 이하로 낮다. 수술을 받는다 해도 5년 생존율이 매우 낮은 암이다. 담도암 4기로 표준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5% 이하로 매우 드물다.

주씨는 커다란 암덩어리로 인한 통증 감소, 간 기능 보존 등을 위해 진단 후 곧바로 우측 간 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후 남아 있는 암 진행 억제를 위해 표준 항암치료를 시행했지만 림프절 등에 남아 있는 종양이 전혀 효과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크기가 커졌다. 종양내과 심선진 교수는 주씨와 그의 아들들과 소통하며 치료방법을 찾아나갔다. 2차 항암치료를 결정하고, 9월부터 약 6개월간 치료를 시행했다. 그 결과, 암세포가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더는 악화되지 않는 상태로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나 2018년 3월부터는 항암제 내성으로 암이 다시 커지면서 주씨의 상태가 더 악화됐다. CT검사에서도 암세포가 커진 것을 확인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았다. 심 교수의 고민도 깊어졌다. 당시 국내 도입 초기였던 면역항암제(키트루다)를 고려해볼 수는 있었지만 높은 치료비에도 효과를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었다. 면역 항암치료 효과를 예측하기 위한 유전자검사에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전자 변이 소견이 확인됐으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심 교수는 “더는 표준치료가 없는 상황에서 환자의 예상 생존율은 3~4개월에 불과해 안타까운 상황에서 환자의 두 아들이 유전자검사 결과를 듣고 적극적으로 면역항암제 치료 의사를 밝혀와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한 번 시도해보자’고 한 것이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 됐다”고 말했다.

2018년 7월부터 면역항암제 치료를 시작한 주씨는 기적적으로 4개월 후인 10월 CT검사에서 암세포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환자 스스로도 몸이 많이 편해진 것을 느꼈고 통증도 거의 없어져 진통제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비급여 항암제로 인한 경제적 문제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더 이상의 치료는 중지했지만 다행히 암 크기는 지속해서 줄었다.

그러던 2019년 10월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다. 주씨는 간문맥 폐색으로 인한 소장정맥류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외과 김두진 교수가 신속하게 원인을 발견하고 출혈 치료를 위해 문맥스텐트 및 정맥류 색전술을 시행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빈혈 원인이 내과적 요인이 아닌 암수술 후 합병증으로 인한 문제임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수술한 덕분에 빈혈도 완치가 됐다”며 “위험한 고비의 순간마다 적절한 치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해서 매우 다행”이라고 말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여러 차례의 고비 끝에 주씨는 최근 진료에서 암세포가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2017년 6월 수술 후 5년이 지난 지금 암세포는 모두 사라졌고 주씨 또한 건강한 일상을 되찾았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릴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주씨는 암을 극복한 비결로 ‘포기하지 않은 아들들과 따뜻하게 손을 잡아준 의료진’을 꼽았다. 또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비결이라고 했다.

주씨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비관하지 않고 농사짓는 친구집에 머물면서 일도 돕고, 몸은 아팠지만 기쁜 마음으로 김장도 50포기나 담갔다”면서 “몸에 좋다는 음식보다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보약이라 생각하고 챙겨먹으면서 두려운 상황들을 이겨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대장암 환자에서는 1차 항암치료의 가능성도 열렸지만 담도암에서는 아직 대규모 데이터가 없어 1차 치료 실패 시 2차 치료로 시도해보는 단계로, 더욱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아직 밝혀야 하는 지표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