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격화되는 시공비 갈등

일부 건설사 ‘워스트 케이스(worst case)’ 선별 작업 돌입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지들 리스크 관리 차원”

착공 후 공사비 증액 안되는 정비사업지들 크게 이슈

수주전에도 소극적으로 임하는 시공사들

결국 주택 공급 위축 불러올 수 있어

분양가상한제 완화해야

차라리 공사 안해…원자잿값 급등에 ‘시공권 포기’ 카드 꺼내는 건설사 [부동산360]
착공을 앞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들 대부분에서 공사비 증액 이슈가 떠오르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부 사업지들 가운데는 시공권 포기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건설회사들의 수익성 악화는 결국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한 지방 재개발 건설현장. [연합]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 최근 원자잿값 폭등으로 시공사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착공을 앞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들 대부분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으며,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부 사업지들 가운데서는 시공권 포기까지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건설회사들의 수익성 악화는 결국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대형 건설사들 법무팀에서 이미 수주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들의 시공권 포기를 두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수익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지들을 따로 분류하고 ‘워스트 케이스(worst case)’를 선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만약 시공권을 포기했을 때 귀책사유는 어느쪽에 있으며 시공사 측에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면 그 액수는 얼마나 될지를 두고 시뮬레이션에 들어간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을 통해서도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지들에 대해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데는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건설회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건설공사비지수(2015년 기준)는 143.06P로 전월 대비 0.48%, 지난해 동월 대비 13.42% 상승했다. 건설 주요 자재인 시멘트 가격은 2020년 연평균 톤당 6만700원에서 지난해 6만2000원으로 올랐다가 올 3월 8만6000원, 4월 9만800원 등으로 2년4개월여 만에 49.6% 급등했다. 지난해 하반기 철근 1톤(t) 가격은 1093달러를 기록해 2020년 상반기 541달러보다 2배 이상 올랐다.

공사비 증액 이슈는 일반 단일 건축물과 도시정비사업지 등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경우 착공 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이 차단돼 있는 탓에 착공 전 사업지들에서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정비사업 조합이 ‘서울시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실착공 후에는 계약금액 조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과 ‘르엘’로 각각 거듭나는 반포 3주구와 잠실미성크로바 또한 조만간 공사비 증액을 놓고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양 단지 모두 최근 나온 사업시행변경인가에 따른 당연한 절차이지만 여기에는 최근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부분도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시공사 선정 후 착공까지 4~5년이 걸리는게 다반사인 만큼 공사비 증액이슈는 항상 존재한다”면서 “과거에는 시공사들이 평판 등을 고려해 증액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한 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최근 한 공사현장의 발주처에서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데 금액을 올려줘도 배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자문을 구해오고 있다”라며 “건설사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자 이와 같은 자문 또한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수익성이 악화되자 시공사들이 수주전에도 소극적으로 임하고 모습이 목격된다. 총 3000가구 규모로 재개발되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의 경우 최근 두차례의 입찰을 거쳤지만 신청업체가 단 한 곳도 없이 유찰됐다. ‘입찰 제로’의 사유도 조합의 무리한 요구에 더해 최근 우울한 건설경기가 영향을 크게 미쳤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자 결국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새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통한 집값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100일 이내에 250만가구+α 주택공급 계획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주택을 지어야 하는 건설사들이 이를 뒷받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의 위축은 최근 미분양 소식도 들려오는 지방 아파트 공급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또 앞으로 정비사업지 수주전에 신청 업체가 단 한 곳도 없는 곳들이 수도권에서도 속속 등장할 수도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결국 오른 공사비를 해결하는 것은 분양가 상한제 완화만이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 분양가격을 올리지 않고서는 올라버린 공사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자잿값 상승으로)올라버린 비용을 수입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분양가를 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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