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피질이 지능공장이자 지식 창고
입력된 정보, 수천 개 모형 만들어,
이들이 투표 통해 하나로 통합 인식
AI지능의 한계와 미래 제시 눈길
리처드 도킨스가 장문의 서문을 썼다면, 일단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심지어 ‘다윈’에 비유하며, 깐깐한 그를 흥분시켜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는 고백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 화제의 책은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인 제프 호킨스가 쓴 ‘천 개의 뇌’원제:A Thousand Brains:이데아)이다. ‘지능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란 부제를 달고 있듯 뇌에 관한 기존의 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생각 자체는 움직임의 한 형태이다”는 기준틀 개념이라든지, 피질 기둥의 민주적 합의에 의해 세계를 인식한다는 주장 같은 것들 말이다.
평생 뇌 연구, 구체적으로는 신피질에 몰두해온 호킨스의 문제 인식은 뇌가 인간의 지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쏠려있다. 인간은 우주가 생겨난 비밀과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밝혀낸 지적인 종이지만 정작 자신의 뇌가 지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호킨스에 따르면, 이는 우리가 데이터를 충분히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손에 쥔 조각들을 어떻게 배열해 맞춰야 할지 모른 탓이 크다.
신경학은 우리의 뇌가 오래된 뇌와 새로운 뇌로 나뉜다고 말한다. 오래된 뇌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 등의 본능적 기능을 담당하고 진화한 새로운 뇌는 오래된 뇌를 통제한다. 본능을 거부하고 신념을 따르는 것은 새로운 뇌로, 이 새로운 뇌가 지능을 만든다. 가령 생존과 번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오래된 뇌(이기적 유전자)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철학이나 예술, 문학을 추구하는 데 평생을 바칠 수 있다.
뇌에서 가장 새로운 부분은 신피질(neocortex)로, 우리 뇌의 70%를 차지한다. 신피질은 대략 쌀알 크기 만한 공간에 신경세포가 10만 개 있으며, 이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시냅스)은 5억 개이다. 이 쌀알 크기의 형태 하나를 피질 기둥이라 부른다. 신피질 전체에 이런 피질 기둥이 15만 개나 있다. 그리고 15만 개의 피질 기둥 하나하나는 서로 연결돼 세계를 인식하고 지능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뇌가 배우는 방식은 세계 모형을 따른다. 즉 단순한 사실들의 집단 형태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무엇인지 알려고 자전거에 관한 사실들을 모두 외우는 게 아니라 우리 뇌는 자전거 모형을 만든다. 이 모형에는 자전거를 이루는 모든 부분들, 각 부분들의 상대적 배열 위치와 각 부분들이 움직이고 협응하는 방식이 포함된다. 지능은 뇌의 세계 모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뇌가 이 모형을 어떻게 배우는지가 핵심이다. 저자는 신피질이 기준틀을 사용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즉 우리의 모든 지식을 저장한다고 말한다. 종이 지도를 예로 들면, 도시 지도는 그 도시의 모형이고, 위선과 경선 등은 일종의 기준틀이다. 기준틀은 사물들이 서로에 대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것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다. 뇌의 세계 모형은 지도와 같은 기준틀을 사용해 만들어졌으며, 그 기준틀은 하나가 아니라 수십 만 개나 있다. 신피질에 있는 세포 대부분이 기준틀을 만들고 조작하는 일을 하며, 뇌가 이를 이용해 계획을 세우고 생각을 한다. 우리가 보고 생각할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저자는 이 기준틀 이론을 ‘천 개의 뇌 이론’이라 부른다. 뇌는 하나가 아니라 독립적인 수천 개의 뇌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존의 과학자들이 감각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 입력이 신피질의 특정 장소에 수렴된다고 보는 것과 달리 저자는 각각의 피질 기둥이 투표한 합의의 결과로 세상을 인식한다고 주장한다. 커피 잔을 들고 바라볼 때 커피 잔이 천 개의 모형이 아니라 단 하나의 대상을 느껴지는 이유다.
신피질은 하나의 피질 기둥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의 지식은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저장돼며 이 피질 기둥들은 완벽히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이 피질 기둥들이 시각·청각·촉각 등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에 대해 투표를 하고 하나의 답을 완성한다. 이를 두고 도킨스는 “우리의 뇌 속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호킨스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기계지능으로 옮겨간다. 천 개의 뇌 이론이 AI가 아직 지능을 갖지 못하고, 진정한 지능 기계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기계 지능이 결국 의식을 갖게 될 것이란 데까지 닿는다.
인텔에서 시작해 버클리를 거쳐 실리콘밸리로, 다시 뇌연구로 돌아와 신경과학연구소를 설립, 평생 뇌 연구에 매진해온 호킨스는 뇌과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 답게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도 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기계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기술이라는 시각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위험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호킨스는 도발적 발언도 삼가지 않는다. 인류는 진화와 자연선택의 산물인 유전자복제의 생물학적 유기체에서 지적인 종이 됐다며, 우리 앞에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과거에 계속 얽매여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 출현한 지능을 수용할 것인가?”
‘지능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뇌의 지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지금까지의 AI에는 왜 지능이 없는지’, 나아가 ‘인류의 기계 지능의 미래는 어떻게 다가올지’까지 놀라운 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천 개의 뇌/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이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