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법의 지배에 의존하는 독일

대충 아닌 ‘똑바로 하는 것’에 열정적

독일의 힘의 바탕엔 반성과 책임,

1949년 기본법 제정부터 난민 수용까지

혼란 극복하며 민주주의 공고해져

‘함께 뭉치는 사회’ 공감대 조명

[북적book적]세계의 모범국된 독일이 잘하는 것
“전쟁 이후로 독일인의 국민 의식은 나치 유산에 대한 공포와 수치, 그리고 배워야 할 교훈에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국민 의식 덕분에 독일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직면했던 다양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에서)

“오늘날 많은 국가가 권위주의 정치에 무릎을 꿇었음에도 독일이라는 나라 만큼은 품위와 안정을 위한 방어벽 뒤에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독일은 왜 잘하는가’)

20대부터 동서독을 오가며 특파원으로 활약한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존 캠프너가 오랫동안 관찰한 독일의 모습이다.

이런 평가에 독일인들은 손사래를 친다. 역사의 과오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병적인 기억 때문이다. 캠프너의 ‘독일은 왜 잘하는가’란 책 제목에도 독일인들은 거북해 하지만 영국에선 베스트셀러가 됐다.

[북적book적]세계의 모범국된 독일이 잘하는 것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영국의 관계는 독일의 짝사랑과 영국의 조롱으로 특징 지워진다. 오죽하면 2002년 슈피겔지가 “많은 영국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독일인을 놀리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고 했겠는가.

그런데 둘의 입장이 달라졌다. 브렉시트 이후 불안한 영국인들은 독일에서 희망을 찾고 젊은이들은 영국문화의 자존심을 버리고 독일 클럽을 찾는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저자는 정치적 성숙을 찾을 수 없는 영국의 현실을 개탄하며, 민주적인 법과 규칙의 확고한 기반을 가진 독일에서 롤모델을 찾고자 한다.

캠프너는 독일이 세계의 모범국으로 떠오른 독일의 힘으로 무엇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꼽는다.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건 불법이다. 나치 상징을 착용하거나 관련 자료를 선전해선 안된다. 학살된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물을 브란덴부르크 정문과 의사당 가까운 곳에 세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강제수용소까지 갈 수 있게 하는 등 생활 속에서 늘 기억하고 있다. 이는 높은 도덕적 경각심과 행동으로 연결된다.

여기에는 정치인들이 앞장섰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 게토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1985년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나치 항복 40주년 기념 의회 연설에서 “죄가 있든 없든, 젊은이든 나이 많은 사람이든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2019년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메르켈 총리 역시 “절대 끝나지 않을 의무”라며, “국가의 정체성의 일부”라고 까지 했다. 시민들도 거리낌 없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대화하며, 과거의 교훈을 확인한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은 세계 시민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을 수용했다. 저자는 환경에 대한 높은 관심과 정책 역시 독일의 경쟁력으로 꼽는다.

독일은 자칭 타칭 ‘규칙사회’로 일컬어진다. 그것도 강박적으로 말이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새벽 4시에도 횡단보도 규칙을 준수하고 점심 시간 이웃의 휴식을 배려해 소음을 내지 않는 일상의 룰이 있다.

저자는 이런 절차에 대해, 즉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닌 똑바로 하는 것에 독일인들이 그토록 열정적인 관심을 갖는 건 의지할 데가 아무 데도 없었기에 법의 지배를 받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의 이런 정체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네 번의 결정적 시기를 찬찬히 살핀다. 1949년 기본법 제정, 1968년 68혁명, 1989년 동서독 통일, 2015 난민 수용 결정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더 단단하고 신뢰받는 사회가 됐다고 본다.

1949년 만들어진 기본법은 독일의 모든 공적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독일인의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기 보다 헌법에 대한 애국심에 가깝다. 독일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을 신뢰하고 의존한다. 법의 영역에선 안전하지만 그 밖에선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과 법은 동일시된다.

전후 독일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공적으로 경제를 새롭게 구축해나가고 있었지만 속죄와 역사인식은 결여된 상태였다. 심지어 괴벨스의 선전부에서 일했던 키징거가 총리로 당선이 됐을 정도다. 젊은 세대는 속죄는 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은 엘리트 집단에 분노했다.

이는 68혁명으로 나타났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침묵과 반쪽 짜리 진실, 그리고 거짓말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기성세대가 애써 외면하려는 두려움을 마주했다. 그러나 68혁명 정신은 몇 년 후 적군파의 테러와 함께 추한 모습으로 변질되고 독일사회는 또 한번 혼란에 빠진다. 독일인들은 묵묵히 이를 이겨냈고 민주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일 독일 과정 역시 혼란과 수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해졌다. 독일은 2015년 난민 수용으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있다.

저자는 독일 경제의 급속한 발전도 살펴나가는데, 독일식 ‘사회적 시장주의’가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개인의 성공보다 공동체의 책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조명한다. 일례로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과 같은 청소 주간을 뜻하는 케어보헤 제도, 100만 명에 가까운 소방 자원봉사자, 독일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하나 이상 가입했다는 사교 클럽 등이다. 오늘날 독일 사회를 지탱하는 밑바탕에 ‘함께 뭉치는 사회’를 향한 공감대가 있다는 얘기다.

독일에 대한 이해가 대체로 두 개의 세계대전에 국한돼 있는 터에 현재의 독일에 관한 의미 있는 보고서라 할 만한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 지음, 박세연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