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부산)=주소현 기자] “플라스틱 오염이 퍼지면서 우리는 먹을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물고기가 플라스틱을 먹고 있습니다”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해양 환경을 포함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마련하는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 개회 본회의에서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이 소개한 케냐 어린이 ‘마일즈 카리우키’의 편지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일즈의 마을을 덮치면서 어획량이 줄어들고 궁핍해졌다는 이야기다.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우리 부모님은 학교 등록금을 낼 돈이 없을 것”이라며 “제발 도와달라”는 말을 끝으로 카라우키의 편지를 끝맺었다.
플라스틱으로부터 마일즈와 전 세계 어린이들, 시민들의 일상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마지막 기회’가 부산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170여 개 유엔회원국 정부대표단과 31개 국제기구, 산업계·시민단체·학계 등 이해관계자 약 3500여 명이 참석해 오는 1일까지 치열한 협상을 벌인다.
국제 사회는 지난 2022년 5월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했다. 우루과이, 프랑스, 케냐, 캐나다에서 네 차례 회의를 거쳐 마지막이자 다섯번째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협약의 주요 쟁점을 두고 4개 분과회의가 진행되고 그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달 1일 열릴 본회의에서 최종 결과가 승인될 예정이다. 이렇게 마련한 조약은 내년 중 열릴 외교전권회의에서 회원국들이 비준하고 이후 자체적인 국내 법을 마련하게 된다.
이날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정부 간 협상위(INC) 의장은 개막 본회의에서 “상당한 개입 없이는 2040년까지 매년 환경에 유입되는 플라스틱의 양이 2022년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치적 협상이 아니라 국경, 분야, 세대를 초월하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제5차협상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플라스틱 제품과 유해 화학물질 ▷지속가능한 생산 및 소비 ▷재정 등 3가지가 꼽힌다. 이에 대해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음식, 집, 우리 몸 또는 우리 자녀와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원하지 않는 화학 물질이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며 “국가 간의 다양한 상황을 이해하면서 일회용 또는 수명이 짧은 플라스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장단은 부산에서 이번 협상위에서 회원국 간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발비디에소 협상위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음달) 1일까지 부산에서 협약을 성안하는 데 자신 있다(confident)”며 “원하는 협약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회원국들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도 “(폐막까지) 63시간 남았다. 이제 시작”이라며 “밤을 지새워야 할 수 있지만, 합의를 도출하면 협약은 유효할 것이고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의장단이 자신감을 내보이는 건, 협약의 틀을 갖췄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발디비에소 협상위 의장은 지난달 29일 제3차 비문서(Non-paper 3)를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일주일 간 협상할 것을 제안했다.
제3차 비문서는 발디비에소 협상위 의장이 제4차 협상위의 77쪽 분량 초안을 17쪽으로 간추린 비공식 문건이다.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 동안 지속 가능한 수준의 생산과 소비를 달성하기 위해 플라스틱 원료(1차 폴리머의 공급)을 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생산에 대한 보고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협상의 출발점을 두고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회원국은 비문서에 동의했지만 일부 산유국은 초안을 토대로 협상하자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번 협약의 핵심 쟁점으로 꼽혔던 ‘생산 감축’이 빠진 헐거운 제안이라는 비판도 있다. 녹색연합은 성명을 통해 “‘지속가능한’이라는 표현은 매우 포괄적이라 구체성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며 “이번 협상위에서 의장의 비문서보다 더욱 강력한 조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회원국이 동의할 법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환경단체들의 우려와 달리, 의장단은 우선 협약을 성안하고, 이후 플라스틱 오염 규제 등을 강화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발디비에소 협상위 의장은 “(협약은) 살아있는 문서”라며 “더 많은 정보와 자료, 해결책 등을 반영해 일상적으로 (협약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번에 미래를 개선하게 될 국제 협약을 성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도 “최초 문서로서 역할을 하고, 이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거치며 추가 요구 사항이 반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