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흔하게 쓴 말이 ‘적폐청산’일 것이다. 그동안 쌓인 나쁜 습관과 구조를 척결하자는 것인데, 실제로는 정치적 청산 명분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도 똑같은 악습을 답보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청와대에서 찍어준 인사를 공공기관장에 앉히기 위해 기존 인사들에게 사직을 강요했다. 청와대 추천 인사는 자질과 무관하게 발탁됐고 심지어 공무원들이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일도 있었다. 최근 환경부 외에 산업부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표적감사를 받다가 중도사퇴한 한 연구기관장이 돌연 사망한 사실도 알려졌다. 유족이 법원을 통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면서다.
잘못된 인사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점은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피해자 유족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한 사건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연은 이렇다. 30년 넘게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근무했던 A씨는 환경기술본부장 공모에 지원했고 최종 3명 후보에 들었다. 3명 중 한 명은 김 장관이 추천한 인사였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장관 추천 인사가 인사검증에서 문제가 생겨 탈락한 것이다. ‘낙하산’이 떨어졌는데도 A씨는 간부회의에서 충격적인 얘길 들었다. “환경부 장관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 목적이고, 임용 절차를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A씨는 사실상 들러리를 선 셈이었다. 기술원 내부 사람들은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기여도가 탁월하다’며 A씨를 임명하자고 건의했지만 결국 공모직이었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A씨는 여기에 반발했으나 오히려 근무지가 바뀌며 사실상 좌천 전보인사 대상이 됐다. 우울증을 앓던 A씨는 결국 인사권자에게 자괴감과 모멸감을 표현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권이 바뀌면 업무와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공공기관장에 꽂힌다. 이전 정권도 다 마찬가지 아니냐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장관은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물론 청와대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역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 전 환경부 장관은 “재량권 있는 인사에서 정치적 책임을 넘어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에 근본적으로 의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표적감사를 벌이거나 지원자 자기소개서를 공무원이 대신 써주거나 아예 공모 절차를 무산시켰던 등의 일들은 관행이라고 정당화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것이었다.
인사에 관한 수사는 검사들에 대한 인사 보복으로 이어졌다.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한찬식 동부지검장과 권순철 차장, 주진우 부장검사는 모두 옷을 벗었다. 검사장 후보군으로 꼽혔던 권 차장은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났고, 주 부장검사 역시 안동지청장으로 밀려나는 명백한 보복인사를 겪었다. 주 부장검사는 사직하며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결국 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없어졌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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