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항구 페롤
바다앞 바위위 등대, 멋진 카리뇨
폰테데우메 정겨운 바다 옆 광장
약속의 땅 베탄소스, 교류의 중심
바이킹도 우정, 시청앞 파라솔 휴식
브루마, 시게이로 거쳐 산티아고로
종점선 ‘꽐라’ 주의, ‘이별 비관’ 금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산티아고 순례길 정통 영국 루트는 ‘페롤~네다~폰테데우메~미뇨~베탄소스~브루마~시게이로~산티아고’이다.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일반적으로 ‘영국루트1’ 페롤 출발 코스, ‘영국루트2’ 코루냐 출발코스는 브루마에서 합류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페롤 출발자들도 코루냐를, 코루냐 출발자들도 브루마 가기 전에 베탄소스를 들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2코스의 합류지점은 브루마(Bruma) 중세 병원 유적 앞이다.
▶페롤, 폰테데우메 고즈넉한 바다 풍경= 정통 영국 코스 시작점은 페롤 번화가가 아니라 북부 해변 곶(串) 코바스 마을이다. 여기서 출발해 남쪽 카리뇨 해변 끝(Cabo Priorino Chico)에 세워진 등대를 거쳐 시내까지 오는데, 경치가 기가 막히다고 한다.
선사시대 유적도 있어 유서 깊은 페롤(Ferrol)은 앞바다의 수심이 깊고 항구를 드나드는 진입로가 좁아 외침을 차단하기 쉬우며, 양 쪽에 요새가 지키고 있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안전한 항구다.
로마시대이후 무역항 기능을 했고, 잠시 군사항구로서 기능이 변했다가, 근대적 도시 형성 이후 조선업의 메카가 됐다. 순례자들에 따르면, 독재자 프랑코의 고향이라 발달했다. 조선업의 도시 답지 않게 녹지가 풍부하고 가로수가 큼직하며, 전반적으로 도시 분위기가 조용~하다.
페롤로 부터 30㎞ 가량 남쪽지점 폰테데우메(Pontedeume)로 향한다. 농어촌의 정취, 유칼립투스 오솔길이 정겨운 네다(Neda)를 지나 만나게 되는 폰테데우메는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만(灣) 옆에 착상했다. 인구 1만명 미만의 어촌 휴양지이다.
장판같은 내해 위로 작은 어선과 요트가 떠 있고, 고풍스런 시청사 건물 아래 돌을 박아 만든 중세풍 광장 위에 아이들이 뛰노는 동안, 어른들이 주변 테라스 바에서 와인 한 잔 들이키는 풍경이 사랑스러운 마을이다.
인슈아 마을을 지나 페드리도 다리를 건너 20㎞가량 가면 헤라클레스의 도시 코루냐를 만나는데, 폰테데우메에서 남쪽으로 직진해 20㎞를 가면, 베탄소스(Betanzos)이다. 페롤길에서 다소 비켜난 코루냐로부터 베탄소스까지의 거리는 23㎞.
▶베탄소스, 수륙양용 허브, 바이킹 흔적도= 국내외 물자의 거래, 종교 등 문명과 사상의 전래, 일본 전범들의 약탈 등이 이뤄지던 한국의 강경포구·법성포구·삼례포구 처럼, 바다가 하도 내륙 깊숙이 들어와,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하구 옆에 베탄소스가 있다. 무역이 활발했고, 교류가 빈번해 고대 갈리시아 왕국을 구성하던 7개도(道) 중 1곳의 도청 소재지였다.
물결은 장판 같고, 기후는 온화하다. 15세기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다가 19세기 코루냐에 편입되는 신세가 됐지만,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원정 성공 이후 식민지에서 돈을 많이 번 나베이라(García Naveira) 형제가 도시의 문화유산과 학교, 아카이브, 목욕탕 등 인프라를 개선하면서 부활했다.
다시 활황을 띠자 ‘약속의 땅’으로 급부상한 이곳의 인구가 크게 늘어난다. 그래서 강원도 옛 탄광촌 처럼, 까치발 기둥으로 떠받친 증축 구조물과 쪽방들이 계속 붙었다. 지금 세계유산이 된 베탄소스 구도심은 이같은 비정형 구조의 건물과 옛스런 중세 건물들이 혼재돼 있다.
북부 유럽에서 떠난 배가 내륙깊은 곳 베탄소스 까지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페롤, 코루냐와는 별도의 영국길 시작점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만데오강의 베야 다리를 건너 성문으로 막 진입한 곳이 베탄소스 발 산티아고 행 시작점이다. 베탄소스~산티아고 간 거리가 57㎞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50㎞ 이상을 다른 코스(순례자 자국 걷기 포함)에서 벌충해야 한다.
안드라데 광장은 오래된 근세 유럽형 정자가 내려다보고, 신앙의 중심지는 샌프란시스코 성당이다. 성당 내부 벽엔 바이킹족들이 무역하면서 갈리시아와 우정을 쌓아 성당측의 허락을 받고 자기네 전통배를 새겨놓았다. 이 성당의 피에타상은 성모-예수 모자(母子) 투샷이 아니라, 천사가 함께 있는 쓰리샷이다. 천사는 쓰러진 예수의 승천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마리나스(Mariñas) 박물관엔 석관묘, 도자기, 상인들의 저울, 방직용 베틀, 옛 의상들, 유칼립투스 나무를 원료로 만든 종이 열기구 축제의 역사 등 이 도시의 흥망성쇠의 족적들이 가득하다.
또, 1630년 스페인국왕 펠리페4세의 신임을 받고 스페인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이곳 제자들이 그린 명화, 심지어 초창기 기계식 영상촬영편집기도 소장해 문화예술면에서 앞서가는 도시였다는 점도 알리고 있다.
베탄소스 시청앞 광장은 식음 테라스, 파라솔이 있는데, 시민들이 낮술을 먹어도 된다.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너무 작아 귀엽다” 미니 교회 아님 주의= 베탄소스를 지나면, 레이도(Leido)마을 가기 직전과 옛 순례자 병원이 있었던 브루마(Bruma)에 알베르게가 있다. 베탄소스~브루마 거리는 22㎞이고, 브루마에서 시게이로(Sigüeiro)까지는 23㎞ 정도 간다. 오랜만에 청정 호수를 만나는 시게이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13㎞.
스페인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갈리시아주엔 농촌의 수확도 풍요롭다. 그래서 마을을 지날 때 마다, 까치발 공중부양형에 십자가 두 개씩 걸린 곡물창고 ‘호레오(Horreo)’를 참 많이 본다. 야생동물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 구조이고, 십자가는 추수감사의 의미이다. 수도원과 성당이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된 경우가 많아 교회당 있는 곳엔 반드시 볼 수 있다.
과거 정통 영국길은 페롤, 네다, 폰테데우메 까지, 고즈넉하고 순박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느낀 이후엔, 좋게 말하면 묵언수행, 섭섭하게 말하면 외로움의 순례길이었다. 그러다가 재미와 다채로움이 넘치는 코루냐와 베탄소스를 거치면 유쾌,상쾌,명랑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게 된다. 브루마 부터는 다시 조용하고 심심해지니까, 잰걸음으로 산티아고행을 재촉한다. 짧지만 어촌-도시-역사문화-농촌 네가지 스펙트럼 한꺼번에 경험하는 곳이 영국길이다.
영국 루트 중 네다, 폰테데우메, 미뇨, 브루마, 베탄소스, 시게이로 등에 의료 시설이 있고, 공립 알베르게는 페롤, 네다, 폰테데우메, 미뇨, 베탄소스, 프레세도, 브루마 등지에 있다.
▶길 위의 벗들 다 만난다..‘꽐라’ 이산가족도= 산티아고 대성당 앞마당 오브라도리오 플라자에 접어들면 환영의 음악소리와 축하의 함성소리가 시시각각 이어진다.
흥미로운 풍경도 보인다. 길 위에서 만나 친구가 될 뻔 하다가 길이 엇갈려 헤어진뒤, 다시 어느 지점 재회해 반가움을 표하다가 또다시 헤어진 순례자 친구를 기어코,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는 점이다. 플라자에서 혹은 순례여권인증소에서 혹은 대성당 주변 바 또는 뒷골목에서 말이다. 이들은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이산가족 처럼 뜨거운 상봉을 한다.
반대로, 친하게 되어 헤어지더라도 산티아고에서 보자고 해놓고 못보는 ‘이산가족’도 적지 않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로는, 먼저 와서 술에 취해 떡실신 상태라서 그날 상봉하지 못한 경우, 성당 앞마당에서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보고싶은 나머지 서로가 서로를 찾아헤메다 결국 만나지 못한 케이스 등이 있다고 한다. 매일밤 산티아고엔 기쁨에 겨운 취객의 괴성이 적막을 깨곤 한다.
한편으론, 순례길 위에서 만나 걸을수록 더 깊은 우정을 쌓다가,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이 가까워질수록 다가올 이별 때문에 슬퍼지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로벌 디지털 소통수단을 풀가동해, ‘길 위의 인문학’이자,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고귀한 순례의 추억을 매개로 알게 된 친구을 절대 놓쳐서는 안되겠다.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인연은 평생 잊지못할, 함께 갈, 벗이 될지도 모른다.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 제주 닮은곳, 행운의 징표들..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 종점의 ‘희년 콘텐츠’ 풍년..몬테고소 10리 지나,리오프닝 산티아고 시내 매력 ▷산티아고 영국길① 헤라클레스의 여인 코루냐 ▷산티아고 영국길② 페롤,폰테데우메,베탄소스..회자정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