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대체 도감 〈9〉 조미김 플라스틱 트레이 “굳이 플라스틱이어야 하나? 꼭 일회용으로 만들어야 했나? 애초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던가?” 너무나 당연하게 한 번만 쓰이고 버려지는,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고 노력하면 친환경적일 수 있는 물건들의 이야기.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밥에 김 싸먹을 먹을 때마다 쓰레기 더미..”
김을 좋아하는 이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김을 담고 있던 플라스틱 트레이를 볼 때다. 기름에 젖은 김 가루가 묻어있기 때문에, 설거지하지 않고 배출할 경우 재활용되기 힘들다. 과연 플라스틱 트레이의 홈 사이사이와 비닐 안쪽에 묻은 기름기까지 깨끗이 제거한 뒤 배출하는 가정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실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가면 김 가루가 묻은 채 버려진 트레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량 포장 조미김은 꼭 플라스틱 트레이 안에 담겨있어야 할까? ‘쓰레기 대체도감’ 아홉 번째 시리즈로 조미김 트레이의 대안을 찾아봤다.
최근 기자가 찾은 서울 은평구의 한 대형마트 조미김 매대에는 총 24개 종류의 제품(김자반 제외)이 진열돼 있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3개 제품이 플라스틱 트레이가 포함된 제품이었다.
물론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지 않은 제품도 있다. 세로 30㎝가량 길이 비닐(필름)에 4~5인분(25g)씩 나눠 포장돼, 소비자가 직접 소분해 먹도록 한 제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필름으로만 포장된 제품은 김밥용 김 제품을 포함해도 11개에 그쳤다.
통상 플라스틱 트레이에 포장된 1인분 조미김은 낱개 제품의 무게가 4~5g로 표기돼 있다. 하지만 실제 저울로 무게를 재보니 12g이 넘었다. 실제 내용물을 제외한 필름, 플라스틱 트레이, 제습제(실리카겔)의 무게가 8g이라는 얘기다. 포장재와 내용물의 무게 비율이 2:1에 달한다.
업계에 따르면 플라스틱 트레이가 들어있는 조미김의 판매 수량은 지난 한해 6억봉을 웃돈다. 여기서 나오는 플라스틱의 무게를 환산하면 약 2280t에 달한다.
제조사가 1인분 조미김을 플라스틱 트레이에 포장하는 이유는 포장 공정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아둔 상태로 필름 포장 공정을 거치면 트레이가 없을 때와 비교해 김이 흩날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김뿐만 아니라 유통 기한을 늘려줄 제습제가 포장 과정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트레이 없이 필름 포장만으로도 제품을 포장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기존 공정을 대체하기 위한 투자 의지가 있다면,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외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조미김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동원F&B(양반김)는 지난 2020년 6월 플라스틱 트레이가 없는 ‘에코 패키지’를 선보인 바 있다. 1인분씩 낱개 포장됐음에도 플라스틱 트레이가 사용되지 않았다. 포장 과정에서 제습제가 이탈하는 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동원은 아예 제습제를 동봉하지 않기로 했다.
제습제를 없앤 영향으로 제품의 유통기한은 다소 짧아졌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동원F&B가 에코패키지를 내놓은 이후 약 1년 반 동안 판매량은 1000만봉을 돌파했다. 이를 통해 동원F&B는 기존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55t 이상 줄였다. 이는 500㎖ 페트병 약 400만개에 달하는 양이다.
조미김 점유율 5위인 광천김도 최근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앤 에코패키지 제품 2종을 선보였다. 기존 제품 대비 부피는 32% 줄였고, 1차 패키징은 비닐 대신 종이(사탕수수 종이)로 대체했다. 풀무원, CJ제일제당 등 주요 조미김 제조사들도 친환경 포장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식품 포장에서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애는 게 무조건 능사는 아니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중량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지 않고, 단순히 종이나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트레이를 대체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거나 일반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종이가 정말 친환경적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2018년 홈볼트 주립대학(HSU)에서 플라스틱 빨대에 주목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HSU는 빨대 한 개가 생산·운반·폐기되기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는데, 플라스틱 빨대 하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5g, 종이 빨대는 1.38g으로 그 차이는 단 0.07g에 불과했다. 또 2020년에 발표된 한 석사 논문(‘Plasticless’, 미시간공과대학)은, 에너지수요량과 지구 온난화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플라스틱 빨대로 인한 영향이 종이 빨대의 2분의1, 3분의1 수준으로 적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럼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어떨까.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미생물이 풍부한 퇴비화 조건이 갖춰졌을 시 반년 안팎이면 썩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땅에 매립됐을 때에만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한계가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는 것이 정부가 안내한 원칙인데, 종량제 봉투에 담겨 버려지면 절반 이상은 매립장이 아니라 소각장으로 향한다.분리 배출 체계와 퇴비화 매립장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생분해 플라스틱은 제 역할을 절반도 채 하지 못하는 셈이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트레이를 아예 제거하는 기술력까지는 확보하지 못해, 종이 등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그 대안이 플라스틱보다 정말 더 환경에 나은 선택지인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