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게, 과감하게, 이 말이 몇 번 나왔는지 몰라요.”
최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반도체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업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최고경영자(CEO)는 현장의 목소리를 이렇게 요약했다. 반도체산업 성장속도는 빠르지만 뒷받침할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데서 오는 대표들의 절박함이 전해졌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인력부족’ 호소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목소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반도체의 위상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2년차를 맞은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287억달러(약 155조원)로 사상 최대 수출기록을 견인했다. 전체 수출액의 약 20%가 반도체였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시장의 파이를 조금이라도 빼앗으려는 해외 기업들의 공세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인 대만의 TSMC는 올해 시설투자만 400억달러(약 48조원)를 쏟아붓기로 했고,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 자사 공장부지에만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약 119조34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로 맞설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막상 투자가 진행되더라도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투자는 결국 인력충원으로 귀결되는데, 외부에서는 공장·설비만 잘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더라”고 하소연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이 처한 한국적 상황은 인력수급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우선 대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글로벌 메모리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롭게 파운드리사업을 확대해야 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을 온전히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취업준비생들은 “미래를 생각하면 파운드리에 도전해야 하지만 당장의 성과급 등 복지를 따지면 메모리사업을 지원하는 게 맞다”는 얘기를 하며 메모리사업에 편향된 선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 먹거리 사업에 인재들을 이끌 유인책이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중견·중소기업들은 어렵게 신입사원을 뽑아놓으면 몇 년 후 대기업으로 인력이 이탈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람을 키우지 못해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급기야 “이젠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CEO들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전체 공급 인력풀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 또한 난관이다. 어렵게 통과돼 오는 8월 초 시행을 앞둔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업계에선 세제 혜택 등 지원은 담겼지만, 인력 충원 해법은 쏙 빠졌다고 지적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수도권 대학정원 증원이 묵살되면서 인력 확보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산업 수장들의 말 속에 담긴 ‘과감하게’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꾸준한 논의가 지속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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