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연은 행성의 궤도…‘그레이트 코멧’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지난해 개막한 초연작으로, 기존 공연에선 본 적 없는 새로운 무대로 관객과 만났다. 공연장이었던 유니버설아트센터를 완전히 개조해 계단식 원형 무대를 여러 개 만들었다. 오필영 디자이너는 “작품 안에서 만나는 인연과 인연을 행성으로, 이들의 관계를 궤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템포로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템포가 맞으면 운명처럼 만난다. “태양계로 치면 일식이 될 수도 있는 인연이 닿는 과정이 이 작품 안에 담겨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행성의 궤도들이 얽힌 것 같은 무대를 만들었다. 배우들의 동선도 궤도를 헤쳐나가고 질러 나가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으로 오 디자이너는 2022 한국뮤지컬어워즈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입체적 무대로 담은 인간의 본성…‘지킬 앤 하이드’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오필영 디자이너의 인연은 특별하다. 2009년 ‘지킬 앤 하이드’ 월드투어(세종문화회관) 무대로 국내 대극장 공연에 데뷔했고, 국내 버전으로 오디컴퍼니에서 제작한 한국어 버전의 ‘지킬 앤 하이드’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누적 관람객 수 150만 명 돌파한 스테디셀러다. 서로 다른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같은 작품에 모두 참여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오 디자이너는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2층 구조로 이뤄진 다이아몬드 형의 입체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인간의 선악을 실험하는 지킬 박사의 압도적인 스케일의 실험실, 런던의 거리,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향한 갈망을 표현한 루시의 클럽 등 매 장면 다른 공간을 구현했다.
초월적 존재의 힘이 돌기둥으로…‘드라큘라’2014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드라큘라’는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드라큘라의 이야기가 웅장한 무대로 구현됐다. 4중 턴테이블의 무대와 드라큘라의 성, 위트비 베이의 저택, 지하 납골당의 웅장하고 정교한 세트를 스무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오 디자이너는 “처음 대본을 볼 때 초인적 에너지를 가진 드라큘라가 굉장히 약한 인물로 표현돼 어렵게 다가왔다”며 “드라큘라의 두려움과 초인적 힘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서치 과정에서 독일에 실재하는 조형물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착안해 돌기둥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20개의 기둥 중 9개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긴박하게 회전한다. “드라큘라의 힘과 에너지가 인간 세계를 마음껏 휘젓고, 휘저어진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 디자이너는 ‘드라큘라’로 제9회 더 뮤지컬 어워즈 무대상을 수상했다.
부와 가난의 대비·상처의 표현…‘웃는 남자’”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라는 빅토르 위고 원작의 문구는 무대 디자인의 큰 축이 됐다. 작품은 총 제작비 175억원을 들인 대작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의 향연이 인상적이다. 무대를 구상하며 오 디자이너는 상처에 대한 생각과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자들은 상처가 드러나 있어도 서로가 상처투성이니 따뜻하게 감싸는 반면, 부유한 자들은 상처가 있을 경우 자신들의 격과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가려야 한다는 것에서 무대 구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상처가 있어도 따뜻한 세계, 상처를 가려야 하는 차가운 세계의 대비에서 무대는 뻗어나갔다. 이 작품으로 그는 2019 한국뮤지컬어워즈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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