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10년간 알짜 노선 슬롯·운수권 반납 조치
공급 좌석수 축소 금지·서비스 품질도 유지해야
“업다운 심한 산업인데 적절한 대응 어려울 것”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초대형 항공사 탄생이 임박했다.
다만 공정위가 양사의 합병으로 인한 경쟁제한성을 우려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당초 두 항공사가 예상했던 합병 시너지가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국제선과 국내선 일부 노선의 운수권과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양사의 결합을 승인했다고 22일 밝혔다.
공정위는 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두 항공사의 합병으로 운임 인상 등의 경쟁제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해당 노선에서 슬롯·운수권 이전(구조적 조치), 운임 인상 제한(행태적 조치) 등의 시정 명령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대한항공은 서울~뉴욕·로스앤젤레스 등의 항공 자유화 노선에서 기업 결합일로부터 10년간 국내 공항 슬롯을 신규 진입 항공사가 요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없이 거절할 수 없다. 서울~런던·파리 등 항공 비(非)자유화 노선에선 슬롯과 운수권을 요청시 이전해야 한다.
뉴욕·로스앤젤레스의 경우 양사의 합산 점유율은 100%에 육박한다. 런던은 79.8%, 파리는 75.5% 정도다. 모두 수익성이 높은 ‘알짜 노선’으로 평가 받는다.
또 전체 국제 노선에 대해서는 신규 진입 항공사가 외국 공항 슬롯 이전·매각, 운임결합 협약 등의 체결, 국내 공항 각종 시설 이용 협력, 영공 통과 이용권 획득을 위한 협조를 요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할 수 없도록 했다.
국내선에서도 통합 항공사가 보유하는 공항 슬롯을 반납하도록 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제주 노선 운항 등이 확대되도록 했다.
공정위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단기간에 새 항공사 진입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구조적 조치가 완료되는 날까지 행태적 조치도 부과하기로 했다.
두 기업이 결합한 뒤 각 노선에 대한 운임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급 좌석수를 축소하는 것도 금지했고, 좌석 간격과 무료 수하물 등 서비스 품질도 유지하도록 했다. 마일리지는 두 회사가 2019년 말 시행한 제도보다 불리하게 변경해선 안된다.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이번 공정위의 결정을 수용하며, 향후 해외 지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통합 항공사 출범을 위해 공정위의 운수권·슬롯 반납 조치를 마지못해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는 통합 항공사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토대로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조치로 사실상 합병 효과가 약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해외 공항에서 양사의 영향력 축소가 우려된다.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시드니 등 해외 주요 공항에서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슬롯 점유율은 0.2~0.5%에 불과하다. 반면, 해외공항을 허브로 가진 해외 항공사는 현지에서 압도적인 슬롯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가 여객사업의 공급 좌석수를 2019년 수준의 ‘일정비율’ 미만으로 축소를 금지한 것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는 부담이다. 축소 금지의 기준이 되는 일정비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추후 기업결합일 전에 이를 결정할 예정이다.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도 넘어야 할 산이다. 공정위가 강력한 시정조치를 바탕으로 합병을 승인하면서 해외 경쟁당국에서도 이를 참조한 결론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돼서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업다운이 심한 산업인데, 주요 노선의 운항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노선의 공급을 특정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항공사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며 “또 시정조치 적용기간이 10년인데, 코로나19 등 외부 변수가 큰 상황에서 공급·운임이 제한돼 적절한 대응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jiyu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