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팔라지는 월세 가격 상승
전세의 월세화 흐름에 고가 월세 속출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평균 월세가격 104만3000원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정부의 대출규제가 이른바 ‘전세의 월세화’에 불을 붙인 가운데 월 임대료 인상까지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늘어난 대출이자 부담에 세입자 사이에서도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임대차 시장의 중심축은 월세로 옮겨가는 추세다. 그러자 최근 전셋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한 가운데 월세가격은 보폭을 넓혀가고 있고 서울은 물론 경기·인천 등지에서도 수백만원짜리 고가 월셋집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더샵하버뷰 전용면적 150.1㎡는 지난달 보증금 1억원, 월 임대료 400만원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웬만한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을 훌쩍 넘는 월세다. 그보다 석 달 전에는 조금 큰 면적(전용 151.6㎡)의 아파트가 보증금이 1억원일 때 월세 500만원으로 세입자를 들이기도 했다. 1~2년 전 월세 시세가 보증금 1억원 기준 100만원대에 불과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변화다.
고가 월세 거래는 서울에선 흔한 풍경이 됐고 분당이나 판교·광교, 하남 미사·위례 등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판교알파리움2단지 전용 129.5㎡는 보증금 2억원, 440만원에 계약됐고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광교중흥에스클래스 전용 109.6㎡는 보증금 2억원, 350만원에 세입자를 찾았다. 더샵판교퍼스트파크에선 국민평형이라고 불리는 전용 84㎡가 보증금 1억원, 월세 280만원에 계약서를 쓰기도 했다.
고가 월세를 일부 사례로 차치하더라도 월세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수도권의 아파트 평균 월세가격은 한국부동산원 집계 기준 104만3000원으로 1년 전(91만6000원)보다 13.9% 올랐다. 지난해 7월 표본 규모를 확대하면서 전반적인 가격대가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높은 상승률이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개정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장기간 이어진 전셋값 상승에 월세시장으로 유입되는 수요가 늘면서 가격 오름세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주택자 세금 부담 강화 등으로 집주인의 세금 전가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 대출규제 강화와 기준금리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월세가격 상승세는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는 최근 전셋값 오름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준월세 가격은 0.8%, 준전세 가격은 1.2% 상승하며 전 분기 대비 상승 폭이 0.1~0.2%포인트 확대됐다. 반면 같은 기간 전세가격 상승률은 2.0%에서 1.3%로 감소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시장의 수급불균형이 해소되면서 전세가격 상승폭이 제한됐으나 전세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면서 월세가격 상승 흐름은 거세졌다고 KDI는 분석했다. 준월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12~240배인 경우, 준전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240배를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 전환 흐름이 빨라지고 있는 만큼 월세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오는 7월 말 개정 임대차법 시행 2년을 지나면서 월세 전환 비중이 늘며 임대료 인상이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월세 거래량이 늘어나는 등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세금 부담 증가, 대출금리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월세의 비중 증가와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