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마지막주, 서울 아파트값 하락 전환
거래침체 속 1년 8개월 만에 상승장 마감
지난해 고점 대비 수억원 내린 거래 속속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이 집값 변수될 듯”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실거주 한 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작년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집을 샀어요. 앞으로 대출 이자를 얼마나 더 내야 할지,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인데 억 단위로 떨어진 실거래가를 보면 잠도 안 와요.” (40대 직장인 A씨·서울 노원구)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인 서울에서 고점 대비 수억원 하락한 단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대선 변수 등으로 거래절벽이 심화한 가운데 간헐적으로 팔린 급매물 가격만 더 두드러진 모습이다. 서울 아파트값이 1년 8개월 만에 상승장을 마감하고 하락 전환한 초입부터 이 같은 실거래가가 찍히면서 A씨와 같은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등으로 집을 사들인 사람)은 대출 금리 인상에 더해 집값 하락 불안에 속만 태우고 있다.
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24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1% 떨어지며 2020년 5월 25일(-0.02%) 이후 20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아파트값이 상승폭을 줄이다 끝내 하락세로 돌아선 데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주택 매수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글로벌 통화긴축에 따른 금리 인상 우려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대선 변수로 관망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매수세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거래시장에선 급매물만 간간이 팔리면서 호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서울 25개구 중 11개구에서 아파트값이 하락했고 6개구는 보합을 기록하는 등 68%가 하락 또는 상승을 멈췄다. 특히 대출 규제의 타격을 받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을 비롯해 성북·동대문·은평구 등의 아파트값 약세가 두드러졌다.
통계상으로는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장을 마무리하고 하락 초입에 갓 들어선 것이지만, 개별 실거래가를 보면 고점 대비 억 단위로 하락한 사례가 속속 포착된다.
노원구 상계동 ‘보람1단지’ 54㎡(이하 전용면적·14층)는 지난달 14일 5억원에 거래됐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최고가(11층·7억원)보다 2억원 빠진 가격이다. 성북구에선 지난달 장위동 ‘래미안포레카운티’ 84㎡(9층·9억원), ‘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 84㎡(3층·11억원)가 각각 고점 대비 4억원, 2억3000만원 내린 가격에 팔렸다.
은평구 ‘백련산에스케이뷰아이파크’(84㎡·11억원), ‘백련산힐스테이트4차’(84㎡·11억원) 등도 지난해 최고가보다 1억원 안팎 내려 손바뀜했다. 이들 사례는 특수 거래건 등이 포함된 직거래가 아닌, 모두 중개거래건이다.
성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에 집을 산 사람들은 실거래가가 이렇게 떨어지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면서 “집값이 떨어지든 말든 실거주로 눌러앉아 살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매달 갚아야 할 대출이 한두푼이 아닌데 누가 집값 내려가는 걸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설 이후에도 당분간 서울을 비롯한 주요 지역의 아파트값 하락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설 이후 대선 전까지는 약보합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대출 규제가 더 강화된 데다 미국이 올해 3월부터 4회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 속에 국내 기준금리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임병철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최근 호가를 낮춘 매물이 늘고 있지만, 거래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수도권 아파트 매매시장은 설 연휴를 넘어 뚜렷한 부동산 정책 기조가 나올 때까지는 관망세 지속과 함께 극심한 거래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대선 이후에는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집값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집값 안정세는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 등 돈줄 죄기의 영향이 크다”면서 “새 정부가 이런 규제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