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내홍으로 부정적 이미지 씌워진 '핵관' 언급

李캠프, 며칠 동안 정청래 SNS 발언 수습에 진땀

조응천 “자진 탈당 해줬으면 하는 의원들 많아”

21일 국회서 기자회견 열고 불교계에 재차 사과

‘불교계 갈등’ 정청래는 왜 ‘이핵관’을 언급했나 [정치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1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에서 열린 '걸어서 민심 속으로' 연남동 거리 걷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이핵관이 찾아왔다. 이재명 후보의 뜻이라며 불교계가 심상치 않으니 자진 탈당하는게 어떠냐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이핵관(이재명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의 탈당 권유 파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국민의힘이 '윤핵관(윤석열 후보 측 핵심 관계자)' 논란으로 최악의 내홍·위기를 겪었는데, 이 후보 지지율 정체 위기감에 사로잡힌 민주당에서 뜬금없이 '이핵관'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정 의원은 지난 18일 밤 페이스북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리며 '이핵관'의 탈당 권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컷오프때도 탈당히지 않았다. 내 사전엔 탈당과 이혼이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며 "여러 달 동안 당내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참 많이 힘들게 한다"고 불만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어 "당이 저를 버려도 저는 당을 버리지 않겠다. 오히려 당을 위해 대선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 지난 컷오프때처럼…"이라고 했다.

과거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공천 컷오프' 됐던 기억을 상기하며, 이번에도 '이핵관'들과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탈당은 없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불교계 갈등’ 정청래는 왜 ‘이핵관’을 언급했나 [정치쫌!]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열린 대규모 승려대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문화재관람료 비하 발언, 정부의 천주교 캐럴캠페인 지원 등 현 정부에서 벌어진 종교편향·불교왜곡 사례를 비판하며 전국 사찰에서 최대 5000명가량의 승려들이 참석했다. [연합]

하지만 대선을 불과 한달 반 앞두고 이 후보 측의 탈당 권유와 거부를 공개적으로 '이핵관'이란 단어를 쓰며 폭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단 '핵관'에 씌워져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문제다. 통상 언론 보도에서 '핵관(핵심 관계자)'는 조직에서 주요 보직·직책을 맡고 있거나, 의사결정 구조 최상단부 지휘 라인을 익명으로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른바 '윤핵관' 사태를 거치면서 '핵관'은 후보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정식 지휘 계통을 넘어서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진 상태다. 이러한 상황을 모를리 없음에도 굳이 '이핵관'을 공개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이 후보 캠프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며칠 간 진땀을 뺐다.

전재수 의원은 지난 21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정청래 의원께서 원래 작명의 달인"이라며 "평상시 보면 좀 세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에게는 '핵관'이 없다는 말씀을 분명하게 드리겠다"고 말했다. 당이나 캠프에 '비선 실세'가 결코 없다는 취지다.

캠프 '레드팀'을 자처하는 조응천 의원도 전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제가 아는 한은 우리 당 내에 '핵관'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전부 다 권한과 직책, 의무가 같은 사람들"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핵관'이라는 게 이 후보와 가까운, 혹은 굉장히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그런 사람, 의원을 얘기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적어도 윤핵관에 대비할 만한 이핵관은 없다"며 권력과 의사결정 권한이 적절하게 분산돼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캠프 안팎에선 정청래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한 '핵관'이 정성호, 김영진 의원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정성호 의원은 선대위 총괄특보단장, 김영진 의원은 당 사무총장 겸 선대위 총무본부장으로, 정식 직함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불교계 갈등’ 정청래는 왜 ‘이핵관’을 언급했나 [정치쫌!]
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두고 '봉이 김선달' 비유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한 뒤 소통관을 떠나고 있다. [연합]

정 의원이 작심하고 '이핵관'을 공개 언급한 이유에 대해선 이 후보 측근 그룹을 향해 '나를 건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의 뜻을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결국 불교계의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있다.

당 내 분위기는 싸늘하다. 정 의원의 갑작스런 돌출 행동에 대한 불만과 함께, 관계 회복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불교계가 또 한번 자극받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조응천 의원은 라디오에서 그의 탈당을 대놓고 압박하기도 했다. 그는 "솔직히 차마 말은 못 하지만 마음속으로 (정 의원이) 자진해서 탈당해 줬으면 하는 의원 분들 주위에 많을 것"이라며 "선당후사, 선당후사 하잖느냐. 지금처럼 선당후사가 필요한 때가 언제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랑하기에 헤어졌노라 그런 얘기도 있지 않느냐"며 "개인적으로는 결단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 선대위 관계자는 "정청래 의원이 불쾌감을 표현하고 싶었더라도 국민의힘 내홍 과정에서 나온 '핵관'이라는 말을 가져다 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고, 캠프 실무진급 관계자도 "대선 승리만을 위해 갖은 불만을 참고 죽어라 뛰는 실무진들을 생각했는지 의문"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 의원은 지난 21일 전국승려대회가 열리는 조계사를 찾아 사과를 하려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교계에 재차 사과했다.

‘불교계 갈등’ 정청래는 왜 ‘이핵관’을 언급했나 [정치쫌!]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나서고 있다. 정 의원은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고 이를 걷는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불교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정 의원은 이날 조계사에서 열린 대규모 승려대회에 비공개 참석 예정이었으나 취재진과의 짧은 질의응답만 나눈 뒤 사찰을 떠났다. [연합]

그는 "저로 인해 불교계에 많은 누를 끼친데 대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회통합과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불교계의 현안을 해결하고, 불교발전을 위해 국회의원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저로 인해 불교계에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참회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지난 몇 달간 저 스스로 많은 성찰과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불교계의 고충과 억울한 점도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또 임인년 새해 첫 일정으로 10여 곳의 천년 고찰을 찾아다녔다고 소개하며 "큰 스님들께서 많은 지혜로운 말씀을 주셨고, 호국불교의 애환과 불교문화재를 지키려 헌신하신 스님들의 고충도 알게 됐다"고 했다.

정 의원은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국민과 불교계 상생발전을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며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 오신 불교계와 스님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데 미력하나마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앞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라고 지칭하며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