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본격화…“경영상 판단 장애물 돼”
기업인들 자율적 경영 옥죄고 아킬레스 건 끊는 격
최근 혐의 있는 기업들은 소송 가능성 커져…기업인 입증 부담도
소송 대비 위한 기업들 움직임 분주…과징금 사건 소멸시효 등 문의
[헤럴드경제=김지헌·주소현 기자] “주주대표소송은 수십년간 기업을 위해 애쓴 경영인의 과(過)만 문제 삼는 행위로 전락할 수 있어 앞으로 실패를 무릅쓰고 계속 도전할 수 있을지 두렵다.”(경영진이 재판을 받고 있는 A 기업의 고위 간부)
최근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조짐에 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시민단체·노동계 입김이 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이르면 다음달 중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특히 보건복지부도 개정 지침은 일관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대표소송은 회사를 위한 주주권 행사의 일환이라고 밝혀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으로 보이는 이사(업무책임이 있는 미등기임원도 포함)에게 해당 회사 주주가 손해를 물어내라며 제기하는 소송이다. 다수 기업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본격화할 경우 기업 부담은 대폭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 추진안은 기업 이사의 경영 판단에 자의적인 ‘메스’를 대 사실상 기업인들의 자율성을 옥죄고 이들의 아킬레스건을 끊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대표소송 남발은 기업가의 혁신 의지를 좌절시킨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처럼 초대형 경영 판단은 모두 위험이나 손실을 감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마치 의사들이 수술실 CCTV 설치에 큰 부담을 받는 것처럼 주주대표소송은 기업 경영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주주대표소송이 온전한 경영상 판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주주대표소송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회사의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입혔는지 검토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이 책임투자라는 명목으로 횡령·배임·공정위 과징금 부과 등을 포함해 손해의 범위를 무한히 늘려 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는 우려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경영 판단 영역에는 내재적인 리스크라는 것이 있다”며 “사업을 할 때 의도치 않게 법 위반하는 경우도 있고 혁신하려다 손실을 볼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국민연금이 나서서 무슨 행동을 하겠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장 선고를 앞둔 기업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20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은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받고 오는 2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SK네트웍스는 국민연금이 6.7%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으로, 향후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횡령, 배임이 회사에 무조건 손해를 입힌다는 도식적인 구조를 그리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주주대표소송를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최근 분주해졌다. 최근 경제단체들에는 소송 대비책을 모색하려는 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이 부과된 사건의 소멸시효와 관련한 문의가 많다고 전해진다. 어느 시점부터 손해가 발생하고 관련 배상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판례상 불명확해 문의해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징금 부과시점 혹은 납부시점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10년이 채 안 된 기업들은 주주대표소송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대표소송 제기 소식에 놀란 기업들이 줄지어 문의를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