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친족관계 변경 등 혼란 이유로 불허 안 돼”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 입양 본질 어긋나지 않아”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9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9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되고 ‘엄마가 누나’가 되는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도 손자녀에게 도움이 되고 요건만 갖추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A씨 등 2명이 낸 미성년자 입양허가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가정법원으로 보냈다.

재판부는 미성년자의 친생부모가 양육을 거부해 조부모가 손자녀의 입양을 청구하는 경우,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고 입양 합의 등 요건을 갖췄다면 허가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입양이 손자녀에게 미칠 이익과 불이익에 대한 구체적 심리와 비교없이 기존 친족관계의 변경이 혼란을 초래한다는 등 이유로 입양을 불허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해 부모·자녀 관계를 맺는 것이 입양의 의미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며 “조부모가 부모·자녀 관계를 맺기 위해 입양을 청구하는 경우 후견제도의 존재를 이유로 입양을 불허할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반면 조재연·민유숙·이동원 대법관은 친생부모가 생존한 경우,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을 더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조 대법관 등은 “입양 사실을 숨기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양친자 관계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향후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며 “친생부모의 자녀 양육을 지지하고 원조할 지위에 있는데도, 조부모가 입양을 통해 부모의 지위를 대체하고 친생부모의 지위를 영구적으로 박탈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A씨의 딸인 B씨가 고등학생 때 C군을 출산하면서 시작됐다. B씨는 C군을 낳기 직전 혼인신고를 했지만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협의이혼을 했다. C군이 생후 7개월이 됐을 무렵, B씨는 C군을 못 키우겠다며 A씨 부부 집에 두고 갔고, 그때부터 A씨 부부가 C군을 양육해왔다. C군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A씨 부부를 부모로 알고 ‘엄마, 아빠’로 부르며 살아왔다.

A씨 부부는 C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을 것과 부모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면 불이익이 클 것을 걱정해 입양을 청구했다. C군의 친모인 B씨는 A씨 부부와 교류가 없고, 입양에도 동의했다.

1심은 조부모인 A씨가 외손자인 C군을 입양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C군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어 A씨 부부가 C군을 입양하면 외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친생모는 어머니이자 누나가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래에 C군이 진실을 알게 돼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하면 신분관계를 숨기기보다 정확히 알리는 것이 C군에게 더 이롭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pooh@heraldcorp.com